제목: 큰딸을 다시 미국으로 보내고
이름: 조기웅


등록일: 2009-09-23 16:44
조회수: 3375 / 추천수: 297


서희가 다시 미국의 제집으로 떠났다.

그래서 한동안 그 아이가 쓰던 옛날의 제 방은 다시 내 서재로 돌아 왔다.

그날 아침 7시경, 삼성동 공항 터미널에서 출국수속 등을 거들어 주고 부산 출장길에 올랐다가 저녁에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살짝 들여다본 옛날 그 아이의 방, 지금의 내 서재는 말끔히 정리되어 있어서 바로 그날 아침까지 남아있었던 그 아이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7월23일, 거의 2년 반 만에 친정에 왔다가, 8월말 부산에서 열린 세계 생명공학회 주관 심포지움에 발표자로 온 길에 근무처인 NIH에서 2주간의 휴가를 받아 3년 만에 고국에 들른 제 신랑과 다시 미국의 Rockville로 돌아가기까지, 두 달에서 3일 모자란 57일을 그 아이가 머물던 곳,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사춘기인 중고교, 대학교까지의 꿈으로 가득했던 시절, 그리고 시집가기 직전까지 기거하던 그 아이의 어린 시절의 추억과 젊음이 곳곳에 배어있는 방, 그 이후는 내가 서재로 꾸며 책보고 음악 듣고, 때로는 오수를 즐기는 그 방을 내게 서재로 돌려주고 돌아갔다.

그 아이가 서울로 오기 며칠 전, 서울에 있는 동안 제 신랑과 같이 있으라고 막내가 기거하는 큰 방을 저희들에게 주고, 막내는 당분간 다른 방을 쓰도록 한다 했더니, 학회가 진행 되는 1주일은 학회에서 경비를 받아 부산의 호텔에서 머물며 구경도 하고 지내고, 5일은 이미 계획된 가족여행기간으로 할애하면 1주일 여 정도 남는데, 제 신랑도 그 기간은 자기 집에서 부모님 및 동생과 같이 총각 때처럼 지내며 낮에만 서로 만나 데이트를 즐기겠다는 설명을 덧붙이며 옛날 자기 방에서 머물겠다고 해서 그도 좋은 생각인 듯하여 그리하도록 했는데, 그 아이가 서울에 온 첫날, “네 방 잘 정돈하여 놓았으니 편히 있으라.” 했더니, “아빠, 이방 내방 맞지!”하며 좋아하던 얼굴이 아직 생생한데 정말 빠르게 두 달 가까운 세월이 쏜살처럼 지나고, 그 방이 다시 내 서재로 돌아왔다.

제일 큰아이여서 제 동생들과 다르게 생각이 깊기도 하고 어른스러운 바도 있었지만, 어릴 때부터 유난히 눈물이 많은 아이여서 젊은 시절 유난히 잦았던 해외출장 길마다 빨리 오라고 눈물로 배웅을 받았던 기억이 여전한데 결혼을 한 성인이 된 지금에도 그 심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듯하다. 시집가기 전 제 친구들과 몇 번에 걸쳐 해외로 배낭여행도 하고, 성당의 청년성가대 활동도 적극적이었으며, 한 때 뮤지컬에 심취하여 틈만 나면 공연장을 찾아 최 정원이라는 꽤 알려진 뮤지컬 배우 등과 언니, 동생하며 교유하는 등 활달함을 보이기도 했는데, 어학연수로 너댓달을 혼자 이국에 있을 때도 그랬지만, 그래서 중간에 집사람과 같이 위문 공연을 간 일이 있지만, 결혼하여 미국으로 떠날 때도, 제 엄마와 같이 미국의 제 집을 찾았다가 나는 출장길로 며칠만 같이 있었지만 제 엄마와는 2주일 여 같이 지내다가 작별할 때도, 작년 스페인 가족여행으로 열흘 넘게 같이 있다가 각각 헤어질 때도 어찌 서글퍼하며 우는지, 늘 그럴 때마다 나도 울컥해져서 시집보낸 딸내미를 가진 아비임을 실감케 했는데, 이번에도 어김이 없어서 그날 아침 삼성동 공항 터미널에서 인천공항 행 버스를 기다리는 그 아이에게 포옹하며 잘 가라고 작별인사를 할 때부터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하더니, 기차 타며 꺼놓은 휴대폰을 부산역에 도착하여 다시 켜니 눈물의 음성메시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각으로 보아서 거의 탑승직전에 남긴 메시지로 울음 반, 인사 반인데, 실상 별 내용도 아니면서 듣고 있는 나도 괜스레 자꾸 울컥해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집사람은 큰아이를 인천공항까지 가서 배웅하고 왔는데, 부산에서 일을 마치고 올라오는 기차에서 4시 좀 지나 집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음성이 이미 한차례 울었던 기미가 있었고, 내가 큰아이로부터 받은 음성메시지 이야기를 하니 다시 울음을 터뜨린다. 보지 않았어도 공항에서의 모녀 작별장면이 연상된다. 나중에 들으니 공항에 아들, 며느리 배웅 나오신 안사돈께서도 그 모습을 보시고 같이 우셨다니, 혹,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요즘 보기 드문 구경거리를 제공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되었다. 집사람은 그날 온종일 집 떠난 어린(?)자식을 안쓰러워하는 어미이었다.

워싱턴 공항에 도착하여 짐도 찾기 전에 잘 도착했다고 연락 왔을 때까지도 울음의 여운이 남아있어서 조금은 걱정이 되었는데, 어제 그제 일요일에 통화할 때는 많이 차분해진 상태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듯해서 다소 안심되었다.

어제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서재로 가서 손에 쉽게 잡히는 CD를 얹어놓고, 읽고 있던 책을 뒤적이다가 잠시 상념에 빠진다. 나도 요즈음 서재에만 들어오면 우선 큰아이 생각이 난다. 요즈음 아무리 만리 먼 곳이라도 휴대폰 단축다이얼 만 누르면 쉽게 통화가 되고, 열 서너 시간 비행기만 타면 어느 곳이라도 쉽게 갈 수 있기는 하지만, 출가시킨 딸을 생각하는 부모의 심정이란 예나 이제나 크게 다르지 않는 듯하다. 언젠가 아주 오래 전, 둘째 여동생이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친정에 들렀다가 돌아가는 것을 대문에서 작별하던 아버님의 눈가에 잠시 스친 이슬을 언뜻 훔쳐본 기억이 있는데, 이제 나도 그때의 아버님 심정을 제대로 이해하는 때가 된듯하다.

이런 공간을 隔한 別離의 아픔과 생각을 통해 우리 큰아이도 성장할 것이고, 어찌 보면 그런 別離가 주는 그리움과 외로움이 살아감에 있어서의 또 다른 기쁨으로 변형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중에 80세의 황제 마에스트로(Maestro) 카라얀의 지휘봉에 맡겨진 베를린 필과 17세의 천재 피아니스트, Yevgeny Kissin이 협연하는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콘체르토 1번은 강렬한 Horn이 이끄는 팡파르로 시작된 격정의 1악장을 지나 차분한 피아노 독주가 motif를 이룬 2악장, 3악장을 거쳐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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