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조기와 밴댕이
이름: 이효철


등록일: 2009-08-22 11:02
조회수: 3789 / 추천수: 314


    조기와 밴댕이

  고향 강화에서 양도 초등학교 다니던 때 이야깁니다.
  일년에 한 번 온 식구가 싱싱하고 맛있는 연평도 생선 조깃국을 먹게 됩니다.
  어머니는 봄철이면 곡우사리 때를 맞춰 늘 함지박에 쌀 한 말을 이고 시오리길인 외포리 포구를 다녀오십니다. 조기잡이 철에는 외포리에 조깃배가 연평도 조기를 싣고 들어오는데 조기 한 접 그러니까 백 마리의 조기를 쌀 한말에 바꾸어 그 함지박에 담아 이고 집에 오시는 겁니다.
  살이 오르고 알이 꽉 찬 연평도 조기는 한자 내외의 크기로 누런 색깔인데 두 식구에 한 마리 씩, 그러니까 부모님과 우리 오남매 그리고 일꾼 아저씨까지 모두 여덟 식구 분으로 네 마리의 굵은 조기를 반 토막씩 내어 그 저녁 어머니는 조깃국을 끓이고 나머지 조기들은 굵은 소금을 뿌려 서늘한 곳에 널어서 굴비말리기를 했습니다. 동내에서도 좀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굴비를 말렸습니다.
  모르기는 몰라도 당시 집에서 말린 그 크기 정도의 알배기 굴비를 요새 백화점에서 사려면 최상급의 국내산 조기로 가격이 마리당 적어도 십만 원 이상 나갈 것이고 그 중 굵은 몇 마리는 부르는 것이 값일 텐데 그러고 보니 어렸을 적 우리 집에서는 요새 시세로 천만 원어치 이상의 굴비를 해마다 소비한 셈입니다. 
  건평 사는 제 친구의 형님은 조기잡이 철에 연평도를 자주 다녔던 모양입니다. 조기가 산란하러 모여든 연평도의 바다에 장대를 넣고 귀에 대고 들으면 봄철 논에서 개구리 떼 울어대듯이 조기들의 우는 소리가 요란하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커서 바다낚시 할 때 가끔 낚아본 수조기 그리고 민어가 바늘에 달린 체 ‘뿌걱 뿌걱’하며 부레 소리 내는 것을 익히 들어봤기에 연평도 바다 속에서 들렸던 조기 울음소리가 이렇게 들렸겠다고 짐작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인천으로 이사한 뒤 중학교 때 까지도 매년 조깃국을 맛 본 기억이 있는데 언제부터인가 연평도 조기가 사라졌습니다. 아마 고등학교 때쯤 아닌가 합니다만 잘은 모르겠습니다.
  중학교 때 선창가에 나가보면 부둣가에 고동색의 굵은 면사로 만든 큰 그물을 길게 널어놓은 걸 본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 그물이 조기 잡을 때 쓰는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아직 나일론 그물이 나오기 전이고 어선의 대부분은 두 폭의 큰 황포돛대에 작은 삼각돛을 갖춘 모양의 무동력선 시절입니다.
  연평도 조기들은 동력어선들이 나일론 그물로 서해를 훑어대기 시작하면서 사라지고 말았다지요.
 요즘 그런 굵은 조기를 구경하기는 거의 어렵더군요. 요새 인천 연안부두에서 볼 수 있는 조기들은 대부분 이십 센티 정도의 크기로 삼십 센티 정도의 그 옛날 연평도 조기는 무게로 세 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맛도 물론 비교가 안 되지요.
  살아생전 다시 그런 연평도의 조기를 구경할 수 있을까요.

  또 기억나는 일이 있습니다.
  김장철이 되면 어머니는 건평포구에서 한 함지박에 생새우를 받아오셨습니다.
  선수 앞바다에는 늘 새우젓 배가 서너 척 자리를 잡고 일 년 내내 새우잡이를 하고 있는데 건평이나 선수포구에서 배가 드나들며 새우젓 필요한 음식료 등을 운반해주고 잡은 새우젓을 받아옵니다.
  새우젓 배는 바다에 닻으로 고정되어 있어서 하루에 서너 번씩 물때가 바뀌면 그물을 올리는데 그물에는 새우만 잡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새우가 가장 많이 잡히지만 손님고기로 밴댕이, 황새기, 꽃게, 망둥이, 장대, 빈줄이, 등 등.......
  경우에 따라서는 그물에 손님고기가 더 많이 들 때도 있고 풀, 나무, 비닐봉지 등 쓰레기도 섞여있습니다.
  어부들은 잡힌 고기들을 부지런히 분류하여 잡은 새우를 소금에 젓을 담아 배에 보관하는데 음력 유월에 잡히는 새우젓이 육젓이라 해서 가장 최상품이지요. 다른 고기들도 나름대로 분류하는데 그 때는 다른 어종이 별로 상품가치가 없어 그대로 버리거나 사료 등으로 팔았다 하는데 그 당시 무척이나 흔히 잡히던 밴댕이는 요 지음 무척이나 귀하고 값도 엄청 많이 올랐지만 잘 잡히지 않는다는 이야깁니다.
  그런데 바쁠 때에는 그물에 걸린 고기더미를 분류하기 전 상태 그대로 운반선이 받아 포구로 나오는데 어머니는 늘 그 생새우를 받아와 김장을 담갔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면 함지박에 가득한 생새우 더미를 신나게 구경합니다. 아직 살아서 움직이는 새우나 꽃게 그리고 망둥이도 살아있는 녀석들을 볼 수 있으나 밴댕이는 속이 좁고 성질이 급해서 그런지 모두 죽어서 꼼짝하지 못합니다.
  어머니는 내가 생새우를 좋아하는 줄 알기 때문에 생새우만 골라 대접에 반 그릇 담아서 고추장과 함께 내어주시는데 나는 그 생새우를 고추장에 비비다시피해서 아예 숟가락으로 입에 퍼 넣습니다. 젓갈용 새우는 일반 새우보다 껍질이 연하여 그대로 먹어도 입안이나 목에 걸리는 것도 없고 무척 맛이 있습니다. 살아서 펄떡이는 새우는 내 입가에 그리고 옷 여기저기에 고추장 자국을 납깁니다.
  참 그때 강화에서는 밴댕이가 무척 흔하고 값쌌습니다. 회로 먹어본 기억은 없으나 구워먹고 소금에 절여 밥할 때 밥솥에 넣어 쪄먹고 아예 밴댕이젓으로 김장을 담그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인천에 있는 한 친구는 밴댕이회의 메니아입니다. 최근 밴댕이회가 인기 있기 전부터 그 친구는 연안부두의 단골 밴댕이 횟집을 자주 찾았고 그 친구 영향으로 많은 친구들이 요새도 가끔 그를 불러 서울에서 연안부두를 찾습니다. 나도 가끔은 그 친구와 함께 그 횟집을 가봅니다. 그런데 회 맛에 비해 값이 점점 비싸지는 거 같아서 이야기 들어보니 밴댕이가 수요에 비해 어획량이 점점 줄어들어서 그렇답니다. 그러고 보니 선수 앞바다의 새우젓배도 그 모습이 살아진 지 한참이나 된 것 같은데 고기도 잘 안 잡히고 오히려 라면봉지 등 생활쓰레기가 더 많이 그물에 올라와 아예 어장이 없어졌다는 이야깁니다.
  예전에 흔해서 부담 없이 즐겼던 조기나 밴댕이가 이젠 귀해졌으니 정말 앞으로 또 어떤 것들이 그렇게 될까요.
  나이 들어가며 예전의 그 시절 기억나는 안타까운 것이 하나 둘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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