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일
이름: 이효철


등록일: 2009-08-06 17:55
조회수: 3618 / 추천수: 329


 

           그 일

 “여보, 어제 진호 작은 고모하고 전화하다가 들었는데 당신 후배 준호 씨가 대법원에서 간첩혐의를 무협의 판결 받았데요. 엊그제인가 신문에서 읽었다고 하던데......”
 “아, 동생이 그래?”
 뜻밖의 소식을 집사람으로부터 듣는 순간 나는 갑자기 마음속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던 오래된 짐 하나가 내려진 것처럼 홀가분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준호가 이제야 무혐의로 간첩 누명에서 벗어난 모양이구나.......’
 그런데 동생이야 준호가 오빠와 가까웠던 후배이며 또 자기에게는 고향의 중학교 선배가 되기에 그 일을 잘 알고 있었겠지만 집사람은 어찌 후배 준호의 이름까지 기억하며 간첩사건에 연루된 그 일에 대해 알고 있었던 걸까. 
 내가 집 사람의 주변 일에 대하여, 예를 들면 처녀 시절 친구들과의 이야기나 학교에 근무할 때의 에피소드, 그리고 처가의 집안 이야기 등 같이 살아오면서 서너 번에 걸쳐 들었음직한 내용으로 집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 내가 가끔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거나 헷갈려서 대화가 어색해지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집사람도 마찬가지여서 내 옛 이야기에 대해서는 내가 이야기 해 준만큼 그대로 기억하는 경우가 드물다. 특히 내가 어렸을 적 고향 이야기를 꺼내면 요새는 아예 귀 기울이기를 사양하는 터라 후배 준호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니 좀 의아했으나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음을 곧 머리에 떠올렸다.
 ‘아 그렇지. 이 일에 대해 잡지에 실린 글 말미에 한 두어 줄 적었는데 그래서 그 일을 기억하고 있는 거로구나.’ 
 금년 초 낚시잡지에 내가 투고한 글이 실렸는데 내가 쓴 글이 잡지에 실리기는 그 때가 난생 처음이었으니 잡지에 실린 그 글을 집 사람에게 자랑삼아 보여주며 글 중 노고산의 자초지종을 이야기해줬는데 그날만은 집사람도 아주 진지하게 경청했음을 분명히 기억한다. 게다가 그 일은 신문에서 처음 알게 된 때에 그 즉시 뿐 아니라 그 후에도 서너 번은 더 집사람에게 들려 준 적이 있을 것이다.
 낚시잡지에 실린 ‘장지포 방죽과 가래질’이라는 제목의 그 글은 어렸을 때 장지포 방죽을 어른들과 함께 찾아 가래질로 고기 잡던 추억과 좀 더 커서 낚시하던 이야기를 쓴 글로 마지막 부분은

‘..........언젠가 강화도를 거쳐 월북했다는 여간첩이 하루 숨었던 곳이 바로 건평리 노고산이라는 뉴스가 있었는데 그 여간첩 이순실은 이북에서도 매우 높은 거물이라 했다. 그 일이 있기 몇 년 전에 고정간첩 사건으로 떠들썩한 적이 있었던 곳도 건평리 노고산 밑의 마을이었다.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지만 그곳도 우리 분단의 삶 속에서 알게 모르게 그런 우여곡절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장지포 방죽은 바로 그런 위치에서 그 이름과 자리를 지키며 언젠가 다시 찾아올 나를 기다릴 것이다.’

 라고 해서 끝을 맺었는데 글 중 그 고정간첩 사건이라 함은 준호와 그 어머니의 그 일을 두고 쓴 것으로 그 내용을 한자 한자 적어나가면서 나는 내 마음 속 한 곳에 늘 준호가 자리 잡고 있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준호는 초등학교 이 년 후배요, 아버지가 근무한 동광중학교를 졸업해 아버지의 제자도 된다. 
 준호의 누나는 몇 년을 같은 반에서 공부했던 동기동창생이고 역시 아버지의 제자다. 준호의 누나는 초등학교 육학년 학예회에서 춘향전의 춘향 역을 맡았었는데 손녀가 무대에 선다는 사실에 노발대발한 준호 할아버지 때문에 학교에서 한참 그 뒷이야기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준호와는 대학교 때 서울 북아현동에 있는 인우학사라고 하는 교회 재단에서 운영하는 기숙사에 같이 이 년 정도 지냈는데 내가 졸업한 후에 준호는 그 기숙사의 자치회장까지 지냈다.
 체격도 건장하고 인물도 좋은 준호는 당시 서라벌 예대 연극영화과를 다녔는데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 예능계통의 학과를 선택했다.
 “형, 난 학교를 졸업해도 공무원이나 일반 회사에 취직하기 힘들다는 거를 형도 잘 알잖아요. 삼촌이 월북한 바람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거, 남들이 딴따라과라고 해도 난 상관없어. 오히려 내 적성에도 맞는 것 같고........”
 준호는 원로 연극작가 차범석 교수가 매우 아끼고 사랑하던 제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언제나 나를 고향 선배 형님으로 깍듯하게 대하였고 나도 준호를 좋은 후배로 여겨 기숙사에서도 자주 대화를 가졌으며 방학 때면 가끔 준호가 우리 집에 들렀고 나 역시 건평리의 준호 집을 찾기도 했다.
 대학 졸업한 후로는 그 일 때까지 십여 년 동안 준호와 직접 연락해본 적도 없었고 다만 어느 큰 회사에 근무한다는 소식 정도만 알고 지냈을 뿐이었는데 그런 준호가 반공으로 서슬이 시퍼렇던 오공시절 강화도 대학생 고정간첩사건의 핵심인물로 검거됐다는 뉴스로 신문을 장식한 걸 본 때가 구미에서 근무할 때이었다.
 그 소식에 매우 놀랐지만 준호나 그 가족을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안타까운 마음만 늘 간직하게 된 것 뿐이다.
 준호와 그의 어머니는 준호가 대학 다니던 때 남파된 삼촌을 집에 숨겨주고 대학교 교련 등에 관한 정보 등을 제공하는 등의 간첩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각각 7년과 3년6개월간의 징역형을 언도받았다고 했다.
 한참 뒤에 한번은 인우학사에서 같이 있었고 준호와 매우 가깝게 지냈던 고향 친구를 만났을 때 들은 관련된 이야기다.
 “나, 준호 때문에 정보부에 들어가서 조사받고 나왔었다. 준호의 친한 친구라고 말이.........”
 또 한참 뒤 양도초등학교 동기동창회가 있어서 졸업한 지 삼십여 년이 지난 어느 날 고향에서 만난 준호의 누나는 그날 내가 동생의 근황을 묻자 준호는 출소 후 고향과 인연을 끊은 체 그럭저럭 지나고 있다고 했다.
 “ 세상 살다보니 그런 일도 있더라구........ 이제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사는 거지 뭘.......”
 준호의 누나는 그렇게 담담하게 말했지만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할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두 남매가 가족을 이뤄 자랐었는데 그 동생과 어머니의 충격적인 그 일로 준호의 누나도 얼마나 답답하고 힘든 세월을 보냈을까 짐작이 됐다. 동생 준호가 결혼은 했다고 들었는데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운전해서 먹고산다는 정도까지는 들은 것 같은데 그럼 그의 부인과는? 그리고 자식들은 몇이고? 지금 살고 있는 곳은? 등등 듣고 싶은 궁금한 내용은 많았으나 더 이상 아무 것도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 뒤 준호의 일에 대하여는 거의 잊고 지내다가 어찌어찌 최근에 고향에서 고기 잡던 내용으로 글을 쓰다가 노고산의 이야기가 나오니까 그 옛날 노고산 은행나무 옆 준호의 집이 머리에 떠오르면서 그동안 알게 모르게 가슴에 묻혀있던 착한 그 후배의 기억도 계속 되살아나서 그렇게 글의 말미에 그 일을 염두에 두고 그런 식으로 몇 자 적은 것이다. 그 내용은 낚시와는 별로 연관도 없는 생뚱맞은 부분이라 잡지사에서 교정 볼 때 삭제되지 않을까도 염려했었는데 그 내용은 한자도 고쳐지지 않은 그대로 실렸고 오히려 다른 몇 부분이 삭제되어 책에 실렸다. 만일 거기에 준호의 그 이야기를 더 상세히 썼더라면 분명히 삭제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경우에 따라는 낚시잡지의 분위기와 다른 내용 때문에 아예 글 자체가 그 잡지에 안 실릴 수 있었겠다하는 생각도 해봤다.
 그런데 그 글을 읽고 그 부분의 숨은 그 일을 떠올릴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저 나만의 글이 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아무래도 언젠가는 준호의 그 이야기도 반드시 글로 적어야지적어야지 다짐은 했지만 그 뒤로는 한참동안이나 잊고 지내던 중 해오던 중에 어제 그 소식을 들은 것이다. 

 나는 오랜만에 한동안 연락도 안했던 고향친구, 그러니까 기숙사에서부터 준호와 만나 준호와 친했던 그 친구에게 핸드폰을 했다.
  한참이나 신호가 가도 받지 않아서 끊으려는데 그 친구가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신 장로님. 이 효철입니다.”
 “누구시라구요? 잘 안 들려서요.”
 “신 장로, 나 이 효철이라구.”
 잘 안들리는 모양이다.
 “나 효철이라구.”
 “아. 참 오랜만이군.”
 나는 즉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혹 준호 소식 들었나.”
 그러나 상대방은 아직 잘 안 들리는 모양이다.
 “여기 백두산 근처인데 무슨 예긴지는 나중에 내가 가서 연락할게.”
 “뭐, 백두산? 여보세요....... 여보세요.”
 그러나 이미 전화는 끊어진 후였다.
 나는 다시 통화할까 하다가 잠시 후 새 글을 시작하려고 컴퓨터 앞에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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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웅
오랜만에 동창회 홈페이지에 들렸는데 단골 기고가인 이 효철 조사의 새로운 글이 실려 있어서 재미있게 통독했음. 종래의 낚시 이야기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른, 어찌보면 사람 사는 세상에서 흔히 있을 수 있으면서도 그저 무덤덤하게 넘기는 경우가 태반일 수 있는 지난 일에 대한 회한, 당사자에 대해 직접적으로 실제로 어떻게인가 대응하지 못하여 아쉬움은 여전히 남겠지만 그래도 어느 형태로든 고백성사를 한 느낌 같은 것을 술회한 내용이었는데, 마지막에 서술된 백두산에 여행 중인 신 장로라는 이와의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채 마무리 된 점이 다소 걸린다.
2009-08-20
19: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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