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강화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던 시절 이야기
이름: 이효철


등록일: 2009-09-21 11:16
조회수: 4226 / 추천수: 304


  강화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던 시절 이야기

 

  한 때 제가 강화에서 서울까지 출퇴근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집에서 시외버스 터미널까지는 천천히 걸어서 십 분 정도 거리니 첫차 출발시간인 일곱 시보다 십오 분 정도 여유를 가지고 집을 나서면 신촌행 직행시외버스에는 십여 명 정도의 승객이 늘 타고 있었는데 그들도 대부분 서울로 출퇴근하는 낮 익은 얼굴들이었습니다. 정시에 터미널을 떠난 시외버스는 갑곳의 강화대교를 건너기 전에 검문을 받고 마송에서 그리고 김포읍에서 손님을 더 태우고 김포 지나서 한 번 더 검문을 받았지만 오십 분 정도면 신촌 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시내버스로 삼십분 이내에 광화문 정부청사 근처의 사무실까지 도착할 수 있었으니 요새 웬만한 수도권에서 출퇴근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한 출퇴근길이었습니다.
 제가 장가들기 일 년 전의 이야기니까 1976년쯤의 일인데 그러니까 1970년에 강화대교가 놓이고 나서 5년쯤 지났을 때입니다.
 강화에 다리가 놓이고 나니까 달라진 것이 하나 둘 아니었습니다.
 서울까지는 빨라도 두세 시간 정도는 각오했던 버스길이 한 시간 이내로 단축됐을 뿐 아니라 해가 있을 때만 대형버스 한 대를 실을 수 있는 소위 엠뽀드라는 배로 버스를 건널 수 있던 것이 통금 아니면 언제나 통행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이제 성애(늦겨울에 한강 얼음이 풀려 바다를 떠다니는 유빙)가 나도 서울 인천 다니는데 걱정할 일이 없어졌습니다. 한 겨울에 다리 밑으로 성애가 밀리는 광경을 보며 강화대교를 건널 때는 그 옛날의 기억을 떠 올리며 강화는 이제 더 섬이 아니라는 걸 실감하곤 했습니다.
 주말이라 해도 지금처럼 길이 막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아마 주말에 차가 밀리기 시작 한 것은 한참 뒤인 86년 이후의 일이 아닌가 합니다. 단지 그때는 마송 근처에서 훈련이나 작전으로 해병대의 행군이나 부대차량 이동 때문에 차가 지체하는 경우가 어쩌다 있었지만 그런 경우도 크게 지체하지는 않았습니다. 늘 편안한 자리를 골라 앉아 출퇴근하는 동안 석 달 동안은 휴대용 녹음기로 테이프를 들어가며 일본어회화도 공부했었는데 학원에 다니면서 공부한 것 보다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정말로 강화읍에서 살면서 서울을 직행버스로 출퇴근할 수 있었던 황금시절은 그 시절이 아니었던 가 생각해봅니다.
 다만 주말 그러니까 토요일에 퇴근하는 경우는 승객이 밀려 긴 줄을 서서 대여섯 대의 버스를 보낸 후에야 버스에 오를 수 있었으나 크게 불편을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말마다 서울사람들이 즐겨 찾는 강화에서 주로 낚시터를 찾거나 친구들을 만나거나 하면서 재미있게 주말을 보냈습니다. 가끔은 회사 동료나 친구들과 함께 강화로 동행하는 경우가 흔했는데 당시 저는 훌륭한 강화홍보대사였습니다.
 낚시를 좋아하는 나는 당시 회사 낚시회의 총무를 맡았었는데 회사의 낚시대회 때 창후리 수로, 망월 수로, 온수리 장흥저수지 등 강화의 낚시터로 회원들을 안내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70년대만 하더라도 강화도는 차가 별로 밀리지 않아 서울에서 주말에 찾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추석 때나 구정 때는 승객이 밀려 버스를 기다리거나 정원을 훨씬 초과한 것이 문제였지 지금처럼 길이 막힌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지금도 그 때처럼 강화에서 버스로 서울을 출퇴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쉽지 않을 것 갔습니다. 첫째로 길이 막히는 문제가 크고 두 번째는 자가용을 이용한다 해도 길 막히는 건 마찬가지에 기름 값이 장난이 아닙니다. 예전에 씽씽 달리던 김포평야는 좌우로 곳곳에 큰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서 군데군데 신호등이 많아 한번 신호대기에 지체하면 몇 분씩 기다려야하고 언제 길이 막힐지 예측할 수가 없으니 자가용을 이용하더라도 아주 이른 시간이 아니면 서울에 도착하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검문도 없어진지 오래고 새 길도 생기고 도로사정도 많이 좋아졌지만 워낙 차가 많이 늘어났고 아파트단지 등 유동인구가 늘어나서 아예 강화에서 출퇴근한다는 꿈은 미친 생각 취급을 받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주말이면 밀리는 그래서 짜증나는 강화 가는 길, 초지대교가 개통되어 다리가 하나 더 늘었지만 주말이면 혼잡한 고향 가는 길..........
 한때는 강화 가는 길이 평소에도 늘 막혀 교통방송에도 늘 막히는 길로 유명세를 탄 적도 있었는데 초지대교가 있기 전 그리고 길이 새로 넓혀지기 전 이야깁니다.
 매년 광복절인 팔월 십오일에는 집안이 강화에 모여 선산 벌초를 하는 지가 이십년 정도 되는데 그때마다 서울이나 인천등지에서 조금이라도 늦게 출발하면 길이 막혀 고생만 하는 경우가 한두 번 아니었습니다. 요지음도 벌초를 끝내고 온 집안이 모여 점심 마친 후에는 대부분 돌아가는 길이 막힐까 걱정들이 우선이니 참 예전에는 전혀 하지도 않던 길 막히는 걱정이 강화의 새 풍속이 된 셈입니다.
 하여튼 제가 일 년 반 정도 강화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다가 결국은 서울에 숙소를 마련했는데 그렇게 된 사연은 이렇습니다.
 어느 겨울 주말에 퇴근하면서 서울서 친구 한명을 데리고 와서 우리 집에서 자고 다음날 얼음 붕어낚시를 하러 같이 양도면 쪽으로 나갔는데 종일 춥고 바람이 심하여 낚시 대신 논의 도랑을 덮은 얼음을 깨고 미꾸라지를 잡아 집에 와서 추어탕까지 끓여먹고 친구는 그날 서울로 떠났습니다. 하여튼 고생은 됐어도 재미있는 추억은 만든 셈입니다. 그런데 다음날 그러니까 월요일 출근하러 정류장에 나섰는데 무척이나 추웠습니다. 버스 안은 완전히 냉방이었는데 출발 시간 직전에야 시동을 거니 강화를 출발한 버스의 히터는 계속하여 찬바람만 쏟아낼 뿐으로 양화대교를 지날 때쯤에야 겨우 미지근한 바람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신촌 정류장에서 내린 나는 완전히 심한 몸살이 들어 도저히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어 그 자리에서 공중전화를 찾아 회사에 전화를 걸어 과장님께 자초지종을 말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이틀을 결근하고야 말았습니다.
 요새 서비스업인 시외버스가 이런 식으로 운행했다가는 난리가 났겠지만 그 때의 정서는 그러려니 했었던 그런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아파서 집에서 누워있는 아들의 모습이 안됐는지 어머니는 겨울에 고생이 된다며 회사 근처로 방을 얻어야겠다고 하시며 그보다 빨리 장가를 가야지 주말마다 낚시나 다니느냐고 한 말씀하셨습니다. 때마침 회사에서 강남 쪽에 독신사원 숙소가 마련되었기에 얼른 그곳에 들어갔습니다.
 그 숙소에 있으면서 집사람과 만나 결혼하고 서울에 신혼살림을 차리니 이후로는 명절이나 일이 있을 때나 강화를 찾게 됐는데 벌써 그 세월도 삼십년이 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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