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큰 군함의 기억
이름: 이효철


등록일: 2010-09-27 20:42
조회수: 3183 / 추천수: 435


 


    큰 군함의 기억

어렸을 적 똑대기 타고 강화에서 인천을 오던 중 인천 외항에 정박 중인 아주 큰 군함을 본 적이 있다.

초등학교 입학 전인데 강화 인천 사이에 정기여객선이 운항되고 있었다면 아마 휴전이후 일거로 짐작되는데 내가 인천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한 때가 일곱 살이던 1954년이니까 바로 그 전해인 1953년의 일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57년 전의 이야긴데..........

그날 내가 똑대기의 난간에서 본 그 군함은 무척이나 컸다. 회색으로 깨끗하게 칠이 되어있는 그 군함의 갑판위에 흰 복장을 한 수병들의 모습이 똑똑히 보일 정도의 거리를 두고 똑대기는 한참시간동안이나 그 군함 옆을 지나갔는데 그 군함의 앞뒤로 달려있는 대포들은 무지무지하게 컸다.

군함위의 수병들이 장난감모양 작아 보일 정도로 큰 그 대포는 군함의 앞쪽에 세 개씩 세 개씩 여섯 개에 뒤쪽에 세 개 해서 모두 아홉 개나 달려있었는데 맨 앞의 세 개는 포가 서있는 각도가 각각이었고 나머지 여섯은 가지런히 포구에 국방색 마개가 씌워진 체 거의 수평을 이루고 있었다.

워낙 큰 대포는 포 구멍 안으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 아니겠나 싶을 정도로 웅장했다.

군함의 뱃머리로부터 군함의 끝부분까지 똑대기가 지나가는 동안 나는 넋을 잃고 쳐다보았는데 배 끝 쪽 그러니까 선미에 달려있어서 바람에 펄럭이는 성조기의 모습까지 아직 기억에 선명하다.

지금 그 광경을 다시 떠올려보면 그 군함은 선수를 강화도 쪽, 그러니까 북쪽방향에 닻을 내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 시간이 썰물 때라는 증거다.

강화에서 인천을 다니는 연락선들은 밀물 때 강화 쪽으로 올라갔다가 썰물 때 인천방향으로 내려왔는데 인천 앞바다의 물살은 워낙 빨라서 시간당 시오리정도는 족히 흘러가므로 물살 방향에 따라 운항시간을 정해서 뱃길 시간도 당기고 연료비도 절약하는 이런 인천의 뱃길운항 요령은 오래전부터 내려온 전통이다.

그래서 그날 그 군함의 정박된 방향이나 인천으로 향하는 똑대기로 봐서 그 때가 썰물시간이라는 것을 확인해볼 수 있는데 내가 이 사실을 굳이 들추는 것은 나의 그날 그 기억이 결코 거짓말이 아니라는 항변 중의 하나다.

 

내가 그 군함이 미국의 전함 미주리호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 것은 한참 뒤로 고등학교 이후였다.

도꾜만에서 일본이 맥아더 장군 앞에서 항복 조인식을 한 이차대전 중에 아이오와급으로 건조된 사만오천 톤 급의 미 전함 미주리호 말이다.

한국 전쟁 시 참전했고 인천 상륙작전 당시 상륙부대 선단 사이에 그 모습이 찍힌 사진도 있는 군함으로 이후 퇴역했다가 월남전에 다시 참전했던 그리고 지금 다시 퇴역한 그 미주리호 말이다.

예전에는 접하기 힘들던 정보가 언제부턴가 인터넷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어서 그리고 특히 전쟁물 메니아들의 인터넷 카페를 통해서 미 전함 미주리호에 관해서 이런 저런 사실들을 확인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그때 그 군함이 틀림없이 미주리호라고 자신 있게 확신하게 된 것은 인터넷에 눈을 뜬 오십 줄에 들어서였다.

물론 고등학교 시절에도 어렸을 적 남아있는 기억 중의 하나인 그 군함의 모습을 가끔은 떠 올리면서 아마도 그 군함은 미주리호 일거야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지만 그 때는 그 사실이 확인된다고 해서 무슨 큰 덕을 보는 것도 아니요 설사 그 이야기를 해도 주위에서는 큰 관심을 보여줄 것 같지도 않은데다가 잘못하면 미친 소리 한다고 너 잘났어 하며 핀잔받기 쉬울 거라는 생각에 그저 나 혼자 그 기억을 되새기며 지내왔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그 시절 아홉 문의 함포로 무장된 미국의 취역 군함은 오직 미주리호뿐이라는 확인을 하고나서는 얼마 전부터 갑자기 이 기억을 글로 남기고 싶어져서 이렇게 글을 적기 시작한 것이다. 그냥 이야기하는 것 보다는 글로 쓰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혹시 누가 이 글 읽고 ‘그래 나도 그 옛날에 그 군함 인천바다에 떠 있는 것 본 적이 있어.’ 하면 얼마나 반가울까 해서 말이다.

아니면 또 나만큼이나 쓸데없는 일에 관심 많은 그 누군가가 자료를 뒤져서는 ‘그렇다. 1953년 몇 월 며칠 미 함대가 인천 항구에 친선 방문 했는데 미 전함 미주리호가 동행했다.’ 라고 댓글을 달아주면 이건 특종 아니겠나 하는 생각도 해보면서 말이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고등학교 일학년 때 영어시간에 영어 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다.

 선생님이 사변 끝자락인지 언젠지 인천에 입항한 미 해군 장병 위문 차 인천의 몇몇 인사와 함께 외항에 정박 중인 미 군함에 올라섰다고 하는데 말이 위문단이지 모두 행색이 거지꼴이었다고 했다.

그래도 귀한 손님들이라고 나중에 장교식당에서 식사를 대접 받는 중 그날의 메인 메뉴로 통닭요리가 나왔는데 도무지 포크와 나이프로 그 요리를 발라내기가 어려워 서로 진땀만 빼면서 아무도 그 통닭을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고 했다. 시중드는 웨이터들의 표정으로는 뭐가 잘못하고 있다는 표정들이지만 그렇다고 뭐랄 수도 없이 뒤에 서서 고개만 갸우뚱하고 있고......... 일행 중 한분이 미국에서 생활하신 분이 있어 서로 그 분 눈치만 살폈지만 그 분은 아예 통닭 요리에는 손도 대지를 않았다고 했다.

나중에 그분에게 물어보니 그 분 이야기가 그 요리는 미국에서도 맨 손으로 먹는 요린데 거기서 자신이 그러면 모두 의아해할 것 같아서 혹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까봐 아예 손도 안 댄 거라고 했다.

선생님의 그 이야기를 들으며 모두는 마른 침을 삼켜가며 안타까운 표정들이었는데 사실 우리 고일 때도 통닭 요리는 무척 귀할 때였기에 우리의 모두 그런 심정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때 영어 선생님이 방문했다는 미 군함이 혹시 그 미주리호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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