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첫 예비군 훈련
이름: 이효철


등록일: 2009-04-03 13:31
조회수: 3929 / 추천수: 325


  
   첫 예비군 훈련

 대구공장에 발령 받고 첫 예비군 훈련 때 이야기니 1973년 9월경이다. 나는 제대할 때 입었던 군복을 그대로 입고 모자의 중위계급장 위에 예비군 마크만 달고 훈련장소인 공장안의 잔디밭으로 집합했다. 직장예비군 중대 규모인 대구공장에는 예비군 병력이 약 사백 명 정도였으니 두 조로 나눈 훈련은 각각 이백 명 내외가 참석하는 규모인데 그날은 넓은 공장의 잔디밭에서 훈련을 했다. 예비군 중대장은 제대한 지 얼마 안 된 나와 입사동기 몇을 신입 예비역 장교라고 훈련 시작 전에 소개를 시키고 나서 나에게는 조교로 예비군 한명을 붙여주면서 별도로 십 명의 병력을 종일 훈련시키라고 이야기했는데 그 십 명은 모두 보충역 자원이라 했다.
 ‘보충역이라..........그럼 제대로 훈련 시켜봐야지.............’
 몇은 나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데 아주 어려보이는 축도 있었다.
 첫 시간 훈련이 제식훈련이라 우선 지급된 카빈 소총을 사총 시켰는데 보충역들에게는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조교와 내가 거들어 사총을 시켜놓고 일렬로 정렬을 시켰다.
 나는 천천히 훈련을 시작했다.
 “지금부터 보충역 분대의 첫 시간인 제식훈련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우측을 기준으로 해서 정식간격으로 정렬하겠습니다.
 우측 선두 기준.”
 내가 제법 큰 소리로 구령하자 처음에 어리둥절하며 엉거주춤한 모습의 보충역들은 서로 바라보며 멀뚱한 표정이었다. 물론 우측에 있던 예비군도 기준이라는 복창소리를 내지 못하고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당시 학교에서 실시하는 교련도 한 번 경험하지 아니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조교는 우측 선두 옆에서 기준 복창을 시범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말하자 입사선배로 병장출신인 조교는 순간 빙긋 미소를 짓고 우측 선두 병사 옆으로 서며 자세를 잡았다.
 나는 다시 큰 소리로 구령했다.
 “우측선두 기준.”
 “기준.”
 선배 조교는 오른 손을 절도있게 위로 올렸다 내리며 내 구령보다 더 큰 복창하니 보충역들은 놀라며 약간 긴장하기 시작했고 근처의 모든 예비군들도 이쪽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야 잘한다.” 하는 예비군들의 소리도 들렸다.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조교의 시범 보셨습니까. 이런 요령으로 복창합니다. 다시 시작합니다. 우측선두 기준.”
 "기준."
  우측선두는 조교의 시범처럼 오른 손을 들고 큰 소리로 기준을 외쳤으나 어정쩡했고 서너 번의 반복 후에야 조교 수준으로 외쳤는데 그사이 다른 보충역들도 알게 모르게 긴장하기 시작했다.
 “ 정식 간격은 왼 팔을 펴서 옆 사람과의 거리가 주먹 하나정도의 거리를 두고 정렬하는 것입니다.
 정식간격 우로 나란히.”
 
이미 보충역들은 훈련소에 처음 입소한 장정들의 긴장 수준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훈련 장소로 열을 맞춰 옆을 지나 이동하는 예비군의 행렬에서 이 모습을 보면서
 “보충역, FM대로 하이소.”
 “임자 만났네. 박박 기어 보드라고.”
 “신임 소대장 잘한다.”
 이미 분위기는 갈수록 보충역들을 몰아부쳤다.
 “분대 차려.”
 “차려 자세는 부동자세입니다. 가슴은 펴고 머리는 바로 세우고 시선은 전방 십도 위를 보면서 고정합니다. 팔을 몸에 밀착시키고 주먹은 겨란 쥔 행태로 해서 손목의 생명선을 재봉선에 밀착시킵니다. 발은 각각 45도의 각도로 벌리고 무릎은 최대한 붙이고........ 좋습니다. 그 자세에서 부동자세로 즉 움직임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부동자세는 군인의 기본자세이다. 내적으로는 군인정신이 충일해야 하고 외적으로는 엄숙 단정해야한다. 이것이 부동자세입니다. 교관을 따라 복창합니다.
 부동자세는 군인의 기본자세이다.”
 “부동자세는 군인의 기본자세이다.”
 서넛은 큰 소리로 복창했으나 아직 서넛은 머뭇거렸다. 그러나 그 모두가 온 공장이 떠나가라고 복창해대기까지는 큰 시간이 필요 없었다. 차려 자세 하나로 보충역들은 훈련소에 입소한 신병수준의 자세가 되었고 나는 영락없는 훈련소 FM교관이 되었다.
 재식훈련 한 시간 동안에 선착순, 쪼그려 뛰기 등의 얼차려까지 경험하게 된 보충역들의 복창소리는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조차 창문을 열고 구경하게까지 이르렀다.
 얼마 후 공장장이 훈련장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예비역 중령 출신인 공장장은 갑자기 요란한 광경을 보고 무슨 일인가 놀란 눈치다. 직장예비군이라는 조직은 예비군훈련을 효율적으로 감당하여 공장의 부담을 최소화시키기 위하여 운영하는 제도인데 공장안에 훈련소 수준의 함성이 들리고 거기다 죽기 살기로 달리는 선착순 광경까지 보이니 공장장은 평소에 모습을 잘 나타내지 아니하던 공장 잔디밭으로 무슨 연유인지 확인 차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중대장이 얼른 공장장에게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잠시 공장장의 이야기를 듣던 공장장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천히 보충역 훈련하는 이곳으로 중대장과 함께 걸어오기 시작했다.
 “전방을 향하여 경례.”
 “충-----성.”
 
이미 보충역들의 경례동작과 구호함성은 현역 수준이었다.공장장이 중대장과 함께 옆에서 보충역 분대의 훈련 모습을 사오 분 정도 지켜보는 동안 보충역들은 더욱 긴장하여 재식 훈련을 받았음은 물론이고 그 짧은 시간 내에 나의 구령에 한 몸같이 움직이는 군대조직으로 변했다. 
  둘째 시간의 각개전투에서 모두는 낮은 포복, 높은 포복, 응용포복, 철조망 통과 등 훈련소에서 가장 힘든 기억을 남기는 동작들을 경험했고 약진 앞으로의 구령에는 현역같이 날쌘 동작으로 달리다 엎드려 거총자세를 취한 후에 서로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대견해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다음 총검술 시간에는 구령에 맞추어 총검술 16개 동작까지 구령에 의해 따라가는 수준까지 총검술 훈련을 소화했다. 하기야 칼빈으로 하는 총검술이 엠원으로 훈련받던 수준에 비하여 수월하기는 하겠지만 아무 생각 없이 훈련 나왔다가 홍역을 치루는 된 보충역들에게는 무척이나 힘들었던 오전 훈련이었나 보았다. 식사 후 오후 훈련 시간에 집합하고 보니 두 명이 슬쩍 일반예비군 사이로 피했다가 다시 보충역 분대로 밀려나오며 매우 멋쩍은 표정이었다.
 이미 점심 식사시간에는 공장안에 보충역 훈련 소식이 큰 화재거리가 된 모양이다.
 부서의 김반장이 점심식사 후 찾아와 소식을 전한다. 
  “이 담임(*)이 오전에 보충역 훈련시키셨지요. 보충역들에게 정말 훈련 잘 시킨다고 난립니다 난리요. 대단했던 모양이네요. 잘하셨어요. 다들 군대 안 가려고 요령 피우던 사람들 아입니까?”

  오후에는 사격술 예비 훈련 소위 피알아이라고 하는 과정인데 두 시간의 훈련에서 모두는 카빈소총의 분해결합요령을 완전히 터득해서 전원이 기준시간 내에 총을 분해결합 했고 총열 위에 올린 동전이 격발 후에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진지하게 사격술 예비훈련에 몰입했다.
   마지막 한 시간은 모든 병력이 한군데로 모여 중대장 시간으로 끝을 맺었는데 훈련을 마친 후 숙소에서는 입사 동료들이 한마디씩 거든다.
 “야, 너 말뚝 박을 거지 왜 제대했냐. 혼자 보기 아깝더라.”
  “여기가 군대냐? 그러다가 길에서 봉변당할라.” 
  “아냐, 아냐, 잘했어. 보충역에게 본 떼 보여준 건 잘한 일이래도.”
   그 일 후에 예비군 중대에는 보충역에 해당하는 직원들의 전화가 한동안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 악질 예비군 장교가 어느 때 훈련이냐, 자기 훈련날짜와 같은 날이면 변경해달라는 요청이 대부분이었다고 했다. 
  입사선배인 대학 선배 한사람도 보충역이었고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며칠 후 나를 보더니 
   “이 담임 나도 보충역인데 내가 훈련 받아도 그렇게 돌릴거요?”
   하며 웃으며 말하는데 순간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머뭇했더니
   “내가 이담임 훈련받는 날을 피해야지. 방법이 없겠군.” 
   라며 먼저 결론을 맺어버린다. 만일 그날 보충역 중에 선배가 있었어도 원리원칙대로 훈련시켰을 까 생각해보니 아마 그렇게 하지는 못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웃으며 선배에게 대답했다.
   “선배님 계셨어도 마찬가지로 했을 겁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터니 선배님이 미리 대비하시죠. 뭘.......”
   한 동안 예비군 보충역 훈련에 대한 그 이야기는 공장안에서 화재거리가 되었다. 나는 그날 훈련을 받았던 보충역 사원들과 이후 얼굴을 보게 되면 서로 아는 체하며 반가워하기도 했다. 그런데 보충역 특별 훈련은 그 날 뿐이었고 이후 예비군 훈련 시 보충역만 별도로 훈련시키는 경우는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주) 담임이라는 생소한 직급은 일본에서 기술 도입한 회사의 일본식 직급으로 당시 대졸신 입사원의 직급으로 담임에서 일 년 반 후에는 주무로 또 일 년 반이 지나면 주임으로 진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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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규
어제 업무차 대구를 갔었는데 형님이 얼차려 시키던 그 공장은 간 곳 없고 그 자리에 마천루같은 아파트숲만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또 한번 세월무상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2009-04-09
15:16:11
엄영섭
저도 보충역으로 있다 28살에 수색에 있는 30사단에 들어가 4주 교육 받고
중대본부에서 근무를 했는데, 이 기초훈련 과정을 거친후 현역으로 복무하신
분들을 존경하게 됐으며, 훈련과정 마치고 받은 연대장 표창 (아마도 전달병
에게는 처음인, 다른 소대는 모두 향도가 받고, 물론 못받은 소대도 전체
6개 소대의 반인 3개 소대였는데/ 사단장 표창 한명, 중대장 표창 1명) 그래 소생은
말하자면 2등을 한 셈인데....

이 연대장 표창 덕에, 직장에서 목안잘리고, 예비군 중대본부 오전 근무, 회사는
오후 근무로 집안에서 유일하게 돈버는 사람으로 가정을 유지할 수 있었으니
훈련소의 표창장은 생명의 은인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중대장님이 인정해 주시어
직장엘 오후라도 나갈 수 있게 허락을 해주셨으니 말이죠. 지금 생각해봐도

생활하기가 쉽지 않았을 때, 직장을 나가라고 배려해주신 중대장님께 고마움을 느낍니다.
물론 오후 근무만으로도 월급을 100% 주신 지금은 작고하신, 사장님도 고맙고요.
우리 효철님의 성격으로 보아 그날 뺑뺑이를 돈 보충역들의 노고가 눈에 선합니다.
2009-04-25
06:4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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