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자가용 시대
이름: 이효철


등록일: 2009-06-15 11:02
조회수: 3418 / 추천수: 319


 오랫만에 글을 올립니다. 그동안 이 곳에 아무도 글 올리는 동문이 안 계시는 바람에  제 글만 계속되는 거 같아 기분이 좀 거시기합니다만 읽어주시고 댓글이라도 올려주시기를.........

      자가용시대

   내가 자가용을 몰기 시작 한 때가 1986년 아시안 게임 직전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살 때이었으니까 결혼 한지는 9년째 되던 해요 큰 아들이 여덟 살로 초등학교 일학년이고 둘째는 여섯 살 되던 해다.
   그 때 내 나이? 서른아홉 살 때.
  운전면허는 진작 82년에 땄지만 운전대를 잡을 기회는 거의 없이 지나다가 복잡한 채무보증 문제로 채무자의 차량을 내가 가지는 조건으로 마무리 되어 팔자에 없이 중고 맵씨 검은 색 승용차를 집 앞에 가까스로 끌어다 놓은 후 할 수없이 시내주행 연수를 며칠 받던 중 추석 연휴를 맞았다.
   아무래도 운전하여 처갓집이 있는 오산(사실은 지금 살고 있는 시골집이 있는 화성시 동탄면이다.)까지 차를 몰고 갈 자신이 없어 평소대로 시외버스타고 외가댁에 가자고 했더니 집사람은 그리 하자고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두 아들이 펄쩍펄쩍 뛰며 난리다.
  “아빠. 그럼 왜 자가용 샀어. 안 돼. 안 돼. 우리 차타고 갈 거야.”
  두 녀석이 난리치는 모습을 보고 갈등하다가 나는 결국 차를 운전해 가리라 마음을 바꿔 먹었다.
  “그래 가자. 차타라.”
  “여보, 괜찮겠어?”
  좋아 날뛰는 두 아들을 보면서 집사람은 무척 떨리는지 짐 보따리를 차에 주섬주섬 실으며 긴장했고 나도 비장한 각오로 운전석에 앉았다.
  차는 몰고 아파트를 떠나 정문을 나와 큰 길까지 나오니 그날이 바로 아시안게임 성화 봉송행사가 인천과 수원사이에서 진행되는 날이어서 가는 길도 여기저기서 엄청 막혔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나는 사단기어에 수동인 그 중고차를 몰고 계속 밀리는 성화 봉송 행사 길을 지나고 수원도 지나서 오산을 거쳐 장인어른이 계신 동탄의 시골동내까지 가족을 무사히 도착시켰을 뿐 아니라 도착 즈음에는 운전의 공포도 거의 사라졌고 오히려 운전의 자신감과 재미까지 느끼기 시작하는 나를 발견했다.
  이런 시작으로 우리 집의 자가용시대가 열렸다.
  86아시안게임 당시 회사에서는 중역들의 전용 기사를 없애고 임원들이 손수운전을 시작하던 때로 회사 안에서는 내노라 하던 중년의 나이에 운전이 서툴다고 새파란 택시기사에게 막말 등 봉변을 당한 전무님이 회사의 방침에 투덜대던 모습을 보고는 민망해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 시절의 그런 일들은 자가용시대로 접어드는 과도기의 한 과정이었다.
  그때만 해도 아파트의 주차장에는 좋은 자리 빼고는 언제나 주차여유가 충분했고 자가용을 타고 다니면 어디서든지 대접을 받아 그 중고차를 가지고 음식점에 가도 매우 친절히 주차를 해주던 시절인데 당시의 그 중고 자가용은 요새의 외제차보다 더 대접을 잘 받을 때였다.
  출퇴근도 집 주위의 동료 몇이서 소위 카풀제로 서울 본사까지 출퇴근도 하면서 또 회사 일의 경우도 내차를 손수 몰고 다니기 시작하니 일상생활에 달라지는 것이 하나 둘 아니다. 주말이면 온 식구가 교외로 차타고 나들이하거나 친척집에도 다녀오고 동생 식구와 함께 낚시터를 다녀오기도 하는 등 생활의 질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다음해 진급하여 구미에 있는 공장으로 발령을 받고 공장으로 내려가 사택으로 이사하니 공장의 부장급에서는 내 중고차가 최초의 자가용이었다.
  이미 주위의 회사에서는 부장급의 절반이 자가용을 모는데도 종업원이 이천여 명이나 되는 큰 공장에서 첫 단추 끼우는 부담 때문이었는지 아무도 자가용을 사지 못하고 주위의 눈치만 보고 있는 중이었다. 더구나 사택에 있는 간부사원들은 더 주저주저하고 있었다.
  내 중고차가 공장에 선을 보인 후 한두 달 내에 한두 명의 부장이 용기를 내어 차를 사기 시작하자 간부사원은 물론 일반직원들 사이에 너도 나도 자가용을 사서 출근하는 등 온 공장에 본격적인 마이카 붐이 일어났는데 상당수의 직원들이 대구에서 출퇴근하기 때문에 진즉에 차 가지기를 원했었다.
  당시 회사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대학후배는 구미에서 경산에 있는 학교까지 일주일에 두 번씩 다녀올 때마다 하루에 네다섯 시간을 길에서 버스 갈아타느라 고생이 심해 차가 꼭 필요했었지만 부장들도 없는 차를 과장이 몰고 다니기가 매우 부담스러워 차사기를 망설이다가 그야말로 ‘선배님 고맙습니다.’이었다.  

  그때가 세 번째의 지방근무였는데 자가용이 있으니까 지방근무에도 여러 가지 달라졌다.
  예전에 명절 때마다 구미에서(더 몇 해 전에는 울산에서) 두 아들을 데리고 고속버스타고 강남터미널로 와서 다시 신촌에 있는 강화행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해서 긴 줄을 서서 강화행 버스를 타고 강화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다니던 일을 생각하면 끔찍했다. 더군다나 고속버스표 예매는 더더욱 신경 쓰이는 일로 어느 해에는 표를 구하지 못해 아예 귀향길을 포기한 적도 있었다.
  차를 몰고 나서부터는 고속버스승차권이나 기차표 예매에 신경 쓸 필요도 없어졌고 웬만한 짐도 부담 없이 두 아들을 태우고 룰루랄라 해가며 고속도로를 지나 서너 시간이면 부모님 계신 인천 집문 앞까지 도착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즐거운 명절이었다.
  다음해에는 차도 새 차로 바꾸고........
  온 식구의 나들이 길도 많아졌고 해마다 여름휴가는 이제 부모님도 차로 모시고 멀리 다녀오고 더구나 낚시 다니는 일은 완전히 날개를 단 격이다.

  그런데 그 황금시절은 그렇게 오래 계속되지를 못했다.

  88올림픽이 끝나고 다음해 서울로 발령받아 다시 서울에 오니 구미에서 점점 대두되기 시작한 공장 내 주차장 문제, 시내의 차 밀림 등의 문제는 약과였다. 서울은 이미 여기저기 차가 막혀 차타고 시내에서 차를 가지고 약속시간 지키기는 이미 힘든 시절이 되었고 어디를 가려면 주차가능여부를 확인해야하는 시절로 이미 바뀌어 있었다.
  서울에서 자가용을 출퇴근 하려면 어느 길을 어느 시간에 다녀야 하고 주차장의 노하우도 있어야 낭패를 면한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한참이나 애를 먹었는데 서울 시내에 익숙하지 않은 운전자는 아예 차를 안가지고 상경해야 하는 것이 상식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 한참이나 인기 있는 충주호에 낚시 다녀 올 때마다 중부고속도로에서 두세 시간 밀리는 것은 아예 그러려니 해야 했고 예전 같으면 오후 서너 시에 대를 걷던 낚시꾼들이 오전이나 늦어도 낯 한시 전에 낚시터를 떠나는 이유도 그 차가 밀리는 것 때문이라는 걸 알고는 매우 씁쓸했다. 그러나 낚시 다녀오다 밀리는 것은 좋아하는 취미 때문이라지만 차로 벌어서 먹고사는 사람들이 차가 밀리면 그들의 입장은 오죽하겠는가?
  그것이 벌써 이십 년 전 이야기로 지금은 물론 길도 더욱 좋아졌고 차들도 더 고급스러워졌으며 대부분의 가정에서 자가용이 필수품이 되어 버려 차 없이 산다는 것이 매우 힘들게 되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그 차가 애물단지다. 더구나 수도권에서는 말도 못한다.
  막히는 길도 문제지만 주차도 보통 힘든 것이 아니다. 게다가 기름 값은 점점 올라 차 몰고 다니기가 겁난다. 잘못 주차했다가는 견인이요, 주차위반 딱지인데 무인감시카메라가 점점 보급되니 나도 모르게 불법 주정차나 교통법규위반의 벌금통지서가 날아오는 경우도 있는데 기분이 나빠도 어디 꼼짝말아다.
  이제 다른 동내아파트에 방문하려해도 차가 가장 애물단지다. 사람이 드나드는 경우보다 차가 들어가는 경우는 자동이건 수동이건 거의 확인을 거쳐야 하는데 꼭 예전에 큰 회사를 업무 차 방문 하는 경우와 비슷한 수준이다.
  도심의 주차문제는 그야말로 심각하다.
  이제 서울 근교인 화성시 동탄면의 산자락 밑의 골프장이 보이는 시골에 이사를 와서 자가용 없이는 출입이 어려운 곳에 살고 있는데 서울 가려면 아예 버스 정류장 부근에 차를 세워놓고 버스전용차선으로 다니는 좌석버스를 타는 경우가 더 편안하고 빨라 서울 갈 경우는 대부분 버스를 이용한다.

  어제 오랜만에 집사람과 함께 차를 가지고 서울 강남의 아는 집 집들이를 다녀왔다.
  약속시간인 오후 여섯시보다 한 시간 반전에 출발한다는 것이 조금 늦어 동탄의 시골집을 떠난 것이 네 시 사십오 분 쯤 이었는데 그래도 충분히 여유시간을 가진 거라고 생각했다.
  토요일 오후라 벌써 고속도로 상행선이 상당히 밀리는 것을 나가는 길에서 확인하였기에 엊그제 새로 부분 개통됐다는 오산 영덕간의 도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 새 길과 또 다른 새 길들이 있어 덕분에 분당 내곡간 고속도로까지 수월하게 갔고 오랜만에 달라진 분당 내곡간 고속도로도 편히 지났는데 거의 다 가서 이삼 킬로를 남긴 도심에서부터 밀리기 시작하더니 삼성역을 지날 때는 그 교차로에서만 신호를 대여섯 번 기다리다보니 결국 약속시간보다 30분 정도 늦고 말았다. 밀리는 시간 내내 다시는 서울 올 경우 꼭 좌석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다녀야지 하는 생각을 다시 몇 번씩이나 하게 된다.
  그래도 예전의 에이 아이 디 아파트를 재건축한 그곳에서는 아직까지 입주초기라 해서 아파트의 차량출입에 대해서는 제지하지 않아 그나마 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다른 아파트 단지에 가는 경우처럼 정문에 들어설 때 마음이 조마조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거 뭐야 자기 차 가지고 다니면서도 마음 졸이고 신경 써야하고 눈치 봐야하고.
   아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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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영섭
옛날에는 차 없어도 잘 지냈는데,
이제는 아들네를 가려고해도 정문에서 신고하고
쪽지를 받아야하고, 웬만한 아파트는 통행문을
막아 놓고 그래 뺑돌아 정문을 찾아야되고
살다보니 불편한 점이 한 둘이 아니네요.
2009-06-16
08: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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