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우럭낚시이야기
이름: 이효철


등록일: 2009-03-31 10:13
조회수: 3692 / 추천수: 335


 재작년에 영흥도에서 낚시배를 한 대 대절하여 화학과 선후배들이 바다낚시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68년도에 그러니까 대학교 시절인데 다섯명의 화학과 총각이 강화도 서남쪽의 만도리라고하는 무인도에 일주일간 머물며 즐겼던 추억을 기념한다고 그 때의 총각들이 주선하여 40년만의 바다여행을 다녀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바다낚시배에서는 우럭낚시보다 선실안에 자리를 잡고 온종일 트럼프놀이인 마이티게임을 즐긴 일행이 있어서 기가막힌 선장의 한마디
 " 내 낚시 손님들 중에 이런 기막힌 손님은 보다보다 첨 보네."
  이 내용은 화학과 회보에 실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일이면 사월이고 슬슬 우럭낚시의 제 철이 다가옵니다. 초보자도 즐길 수 있으며 낚인 우럭 놀래미를 즉석에서 회를 쳐서 맛볼 수 있는 우럭낚시말입니다. 요새는 인천 등 서해안에서 쉽게 낚시를 다녀올 수 있습니다.
 오늘은 우럭낚시의 이야기를 올립니다. 천천히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우럭낚시 이야기

 요사이도 가끔 우럭낚시와 관련하여 벌써 40년도 훨씬 지난 옛날의 이야긴데 고등학교 일학년 때 물리선생님이 공부시간에 들려주었던 인천 앞바다에서의 바다낚시이야기를 종종 기억해낸다.
 “낚싯줄을 내리고 말이다 납 뽕이 바닥에 닿을 듯 말 듯 손으로 들었다 놨다 하면 드디어는 톡 톡하며 고기가 온 느낌이 온단 말이다. 야, 왔구나,...... 기다리다가 후드득할 때 줄을 채서 당겨내면 고기가 걸려 나오는데 그 손맛....... 해보지 않고는 너희들은 모른다. 큰 놈은 대단히 크다.......”
 망둥이낚시도 매우 좋아했고 붕어낚시도 막 다니기 시작한 나는 마른 침까지 삼켜가며 선생님의 신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언제 바다에서 선생님처럼 꿈같은 바다낚시를 해볼 수 있을까 하며 부러워했다. 그 시절에 배까지 타고 바다로 나가 낚시를 즐길 수 있다니 정말로 물리선생님은 팔자가 대단히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당시는 돛배를 전세 내어 서너 명이 인천에서 출발해 근처바다에서 낚시를 했다는데 팔미도 하면 무척 멀리 나가는 경우로 팔미도부근에서는 고기가 엄청 잘 잡혔다고 했다.
 포인포에 도착하면 뱃사공이 노를 저어서 배를 포인트로 유도했으며 우럭, 놀래미, 민어, 광어, 장대 등이 잡혔다는데 최고의 미끼로는 갯지렁이보다 쏙을 쳐준다고 했었다. 요새처럼 미꾸라지나 오징어 꼴뚜기도 쓴다는 건 까맣게 모르던 시절 이야기다.  

 그 바다낚시를 처음 해 본 적이 대학교 일학년 때로 사촌 형과 형의 친구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만석동에서 돛단배를 하루 대절해서 인천의 만석부두앞 바다에서 우럭과 꼼장어를 잡아봤다. 당시는 만석동 앞바다도 그런대로 깨끗하던 시절로 만석부두에는 이미 낚시손님을 태우는 작은 돛배들이 여러 척 있었으며 부두의 낚시가게에서 채비와 미끼만 준비하면 우럭낚시가 가능했고 씨알은 잘아도 바로 앞바다에서도 고기가 곧잘 낚였다.
 그날 세 명의 꾼은 모두 바다낚시의 왕 초보들로서 선장은 하루 종일 줄 풀어주고 채비 갈아주느라 애를 먹었는데 그날의 우럭낚시방법은 요사이처럼 포인트 위로 배를 흘리는 방법이 아니었다. 포인트 한참 앞 쪽에 닻을 내려놓아 배를 고정시켜놓고 포인트 방향으로 채비 줄을 흘려가며 고기를 잡았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채비가 바닥에 걸리면 채비 줄에다 고리달린 빈병을 걸어 물위로 흘려보내어 걸린 채비를 살려냈는데 제법 훌륭한 방법이어서 거지반 걸린 채비가 풀려나왔다. 물론 채비회수는 선장의 몫이었다.  

 그 뒤로 회사생활을 시작한 첫해 겨울 그러니까 1973년 12월의 어느 날 대구에서 근무할 때인데 큰 맘 먹고 릴과 바다전용 이본대를 준비해서 동해안으로 열기낚시를 다녀왔다.
 그 열기낚시가 나로서는 본격적인 선상낚시의 첫 경험인데 경운기엔진을 단 1톤 급의 작은 배에 네 명이 타고 육지에서 20분 거리정도의 바다로 나가 서너 시간 동안에 엄청 많은 양의 열기를 낚았다. 그날 저녁 잡아온 열기로 회사의 숙소에서는 큰 회 파티까지 벌어졌는데 낚아온 고기들을 본 주의의 동료들로 부터 나는 어부라는 별명까지 듣게 되었다.
 평소 주말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붕어낚시를 다녔기에 낚시꾼내지는 붕어사기꾼이라는 칭호는 익히 들어왔지만 어부라는 흉악한(?) 호칭은 그 열기낚시 때 처음이었다.
 그날 사용했던 그 투박한 낚싯대는 아직까지 보관하고 있으며 작년에 우럭낚시 때 동행한 조카가 사용한 적이 있는데 주위의 꾼들로부터 관심(?)을 끌기도 했다.
 몇 년 후 울산에서 근무할 때 열기낚시를 몇 번 더 해본 경험이 있었지만 당시는 바다낚시를 한번이라도 나가려면 짧은 낚시 시즌에 교통문제, 배 대절문제, 비용 등이 부담되어 무척이나 큰 맘 먹어야 할 만큼 모든 여건이 지금보다도 열악할 때였다.
 과장시절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흑백텔레비전 시절일 때 일본 출장 가서 컬러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낚시프로를 보며 우린 언제나 이런 프로를 볼 수 있겠나, 또 저렇게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재미있게 낚시를 할 수 있을까........ 부러운 것이 한둘 아니었다.
 이후 구미에서 근무할 때 바다낚시는 배를 대절해야나 가능했고 거리도 멀어 거의 바다낚시를 다닐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또 요지음의 갯바위낚시는 아직 덜 알려진 때라 내륙에서 갯바위낚시 같은 바다낚시는 꿈도 꾸지 못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80년대 중후반에 들면서 인천에 전문 우럭낚싯배들이 몇 척 생기더니 연안부두에 남항부두에 만석부두에 우럭선상낚시 예약 출조가 자리 잡기 시작한다.
 이때는 서울의 본사에서 근무할 때라 어쩌다 서너 번 남항부두에서 예약하는 방식으로 우럭낚시를 다녀봤는데 드디어 대전에서 근무할 때 모임의 부부들과 함께 30 명 정도가 탈 수 있는 우럭낚시 전용선을 대절하는 대형 사건까지 저지르고야 말았다.
 “우리 모임 이효철 총무는 낚시의 대가가 아닙니까? 한번 서해안으로 바다낚시를 가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모임에서 어느 날 계족산을 다녀오던 중 낚시라고는 한 번도 다닌 적이 없는 어느 회원의 엉뚱한 제의가 결국은 1998년 늦봄의 우럭낚시행사를 탄생시켰는데 그 날이 6월 20일이다. 새벽 4시에 대전에서 출발한 대절 버스에서 그날 치러진 프랑스 월드컵의 대 네델란드 전에서 한국이 5대0으로 패하는 현지 중계방송을 들었기 때문에 그 날을 확실히 기억한다.
 일행은 인천 남항부두에서 대절한 우럭전용낚싯배에 올랐다. 일행의 삼분의 이 정도가 처음 바다낚시를 나왔지만 그날의 조황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영흥도와 자월도 근방의 얕은 수심에서 대부분이 자세에 감긴 낚싯줄을 손에 잡고 낚시를 했는데 고패질을 하는 중에 여기저기서 손바닥보다 더 큰 우럭과 놀래미가 달려 나오니 모두 탄성이었다. 특히 생전 처음으로 고기를 낚아보는 부인들이 더욱 난리였다.
 “지금부터 잡은 고기 중 제일 큰 고기는 보관하시고 2,3등 크기로 두 마리씩 횟감으로 공출합니다.”
 “고기 잡으신 부부는 즉시즉시 기념 촬영 있습니다. 후손에게 물려줘야 하는 귀중한 사진이니 무조건 다정한 포즈를 열심히 취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동 중에는 열심히 그리고 맛있게 회를 드시는 타임입니다. 이곳에서는 체면보다도 젓가락이 우선합니다. 나중에 후회 마시고 회 드시기에 분발하시기 바랍니다.”
 등 등.......
 좋은 날씨와 좋은 물때의 즐거운 분위기 중에서도 서툰 낚시솜씨지만 가까스로 엉킨 줄을 풀어 낚싯줄을 내리고 고패질을 시작하려면‘올리시오’하는 선장의 잦은 마이크 소리가 초보들에게는 매우 짜증스러웠던 모양이다.
 한 사모님의 한마디 왈
 "거 참, 집어넣고 기분 좀 낼 만하면 빼라 하네.”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들은 몇은 순간 모두 배꼽을 잡고 큰 웃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는데‘기분 좀 낼 만하면 빼라 하네.’라는 말은 그 뒤 모임의 영원한 어록에 남는다.

 그날 잡은 고기를 집에 가져갈 거라고 집집마다 아이스박스는 모두 준비해오는 바람에 총무인 나는 내심 걱정도 했지만 조황도 좋아서 모두 섭섭지 않을 정도로 낚은 고기들을 집에 가져갔었고 모임에서는 그 뒤에도 두세 번 더 대절배로 낚시를 다녀왔으며 아직까지도 가끔 그 몇몇은 작당하여 선상우럭낚시를 몰려다닌다.

 그런데 최근 우리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변화의 속도가 빠르듯이 마찬가지로 선상우럭낚시의 경우도 살펴보면 그 낚시문화의 변화속도가 대단하다.
 어쩌다 한번 낚시 다녀와서는 크게 봉을 잡힌 것 같아 섭섭하거나 기분 잡쳤던 예전의 경우는 거의 사라졌고 한 번의 손님을 영원한 단골로 만들려는 낚싯배마다의 경쟁이 벌어지기 시작하니 시간이 갈수록 서비스가 점점 달라진다.
 처음 예약 우럭낚시배가 생겨나면서 점심 등을 챙겨주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낚싯배에 동행하기 시작하는데 초기에는 손님들이 한두 마리씩 내어준 고기로 점심용 찌개를 끓여주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점심용 재료도 아예 낚싯배에서 일체를 준비하고 손님이 낚은 고기는 철저히 손님 몫으로 챙겨주기 시작한다.
 새벽 여섯 시부터 떠나는 그 시간에 아침으로 라면 끓여주고, 커피는 종일 셀프로 무료 제공, 주요 미끼인 미꾸라지까지 무료제공, 회 떠주기도 무료봉사, 사진 서비스 등 등 단골을 확보하려는 경쟁에 우럭낚시의 인기는 점점 올라갔다.
 사진 서비스도 처음에는 큰 우럭이나 광어를 낚으면 사진을 찍어 배에 보관하고 있어 이후 출조하여 사진을 찾아가게 하더니 낚싯배 혹은 유선낚시 회사별로 인터넷홈페이지가 생기면서 출조 당일 저녁이면 그날의 즐거웠고 신났던 모습을 확인하는 수준에 이미 오래전부터 이르렀다. 이제 작은 우럭낚싯배라도 홈페이지서비스는 기본이다.
 외환위기 때를 만나니 우럭낚시는 오히려 더욱 손님이 모여들어 주말 또는 물때가 좋은 날 새벽의 인천 남항부두 주차장은 초만원으로 북적대는데 7,80년대 대절 낚시버스로 붐비던 한남동의 새벽 분위기보다 더 활기가 넘친다.
 그 옛날의 물리선생님이 요새 우럭낚시 가본다면 놀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낚싯배도 커지고 속도도 빨라지고 레이더와 어탐과 GPS는 이제 필수장비인데 서로 서로 더 멀리 새 포인트를 찾아 나서 덕적도 아래쪽도 이미 인천에서는 장거리 출조가 아니다.  
  낚싯배마다 비장의 포인트 개발이 치열하다. 더 멀리 더 멀리.......

 최근에는 서해안 전 지역의 먼 바다,홍도, 거거도 근처까지 그야말로 우럭찾아 삼만 리 시절이다.
 오랫동안은 수중 바위를 중심으로 포인트 삼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형태의 포인트로 어초에 침선에.......
 낚시장비도 나날이 좋아진다.
 십여 년 전만해도 대접받던 스피닝 릴은 우럭낚싯배에서 자취를 감춘지가 이미 오래고 전동식 장구통 릴에 합사줄은 이제 거의 필수다.
 이런 장비와 낚싯배로 예전에 바다에 나갔으면 얼마나 재미있게 많은 고기를 잡았을까.
 그
런데 우럭낚시꾼이 많아지고 해마다 근해에서 고기 잡기가 더 힘들어지면서 인천부근에서의 조황이 눈에 띄게 나빠지니 이제는 열성꾼들이 태안으로 격포로 목포로....... 출조장소를 멀리하기 시작한지 오래다. 그런 곳에 출조하다 보면 대부분이 열성꾼인데 그들의 우럭낚시 경력이나 노하우는 정말 대단하다. 사실 갯바위 전문바다낚시꾼 사이에서는 우럭낚시도 낚시냐고 아예 낚시로 취급도 하지 않는 분위기지도 있지만 선상우럭낚시도 이제는 뿌리내린 어엿한 우리나라 낚시의 한 분야요 또한 하면 할수록 개척하고 다듬으며 발전시켜 나아가야 할 당당한 레포츠의 하나라고 본다.
 그런데 사실 나도 그럭저럭 우럭선상낚시에는 제법 연조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여지없이 무너진 것은 침선 전문낚시를 다녀보며 부터다. 첫 침선낚시야 날씨가 나빠 잘 몰랐지만 이후 몇 번 침선낚시를 다녀보니 주로 단골들이 찾는 침선배안에서는 전혀 새로운 분위기를 느끼게 됐다.
 보통 출항신고서명부를 작성하면서 내 나이를 따져보면 대부분 두세 번 안에 드는 연장자인데 낚싯배위에서의 서열은 장유유서가 아니라 실력과 경험과 체력이 우선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 젊은 신세대조사들의 극성스런 열정과 집중력 그리고 기술과 체력 앞에는 나는 기가 질려 한발자국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승선하니 결전을 앞두고 전장에 나서는 용사들같이 비장한 모습으로 분주히 낚시할 자리정리를 끝내고 이내 선실에 들어가 항구를 떠나기 전부터 거지반 차분히 잠부터 청하는데 여기 저거서 무리지어 즐겁게 떠들어대거나 라면국물로 해장술을 나누는 인천 남항부두의 들떠있는 출항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포인트에 도착해서도 줄을 내릴 때도 일사불란한 모습에 주눅이 들어 처음에는 혹 실수할까 마음 졸이며 한참이나 초보운전자 시내 연수하는 기분으로 낚시를 했다. 그러면서도 남보다 월등히 좋은 조황을 보이는 몇 명의 젊은 조사들이 노련하게 낚시하는 모습도 지켜보면서 저건 분명 운이 아닌 경험과 기술의 결과라는 것을 느끼면서 과연 우럭낚시도 가면 갈수록 배워야 할 것이 무궁무진하구나 하는 것을 생각했다. 

 이제 화재를 바꿔 큰 기대로 떠났다가 고생만 했던 첫 선상낚시의 추억으로 이 글을 끝내보려 한다.
 몇 년 전 늦가을에 그 모임의 셋이 모처럼 작당하여 태안 안흥의 유명한 침선전문낚싯배를 예약하고 한밤중에 수도권에서 출발했다. 출발 전에 예약한 낚싯배의 홈페이지에 실린 기가 막힌 조과들을 모두 확인한 터라 그동안 인천에서 서너 번 같이 다녀왔을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훌륭한 조황일 거라고 흥분된 분위기가 차안에 가득했다. 모두 침선 낚시는 처음인데 대구도 낚일 수 있다는 이야기에 채비나 낚는 기술이 낯선 것 같아 조금 걱정되기도 했지만 그런데 무엇보다 나빠진 일기예보가 더 마음에 걸렸다.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정원을 채운 침선 전문낚싯배에 올랐는데 비바람까지 몰아치는 가운데 안흥에서 세 시간이나 배를 몰아 파도와 싸워가며 줄을 담그고 여기저기 포인트를 뒤졌으나 그날 일행은 누구도 입질 한번 못 받았다. 그날 낚인 것은 낚싯배를 통 털어서 작은 대구 몇 마리와 우럭과 놀래미는 합쳐서 열 수가 안됐다.
 일행 중 하나는 중간에 배 멀미로 아예 선실에 누워버렸는데 선실에는 남편을 따라 배에 올랐던 어느 부인이 진작부터 심한 멀미로 누워있었다.
 안흥항에 돌아온 우리 셋은 다른 낚시꾼이 떠나며 주고 간 두 마리의 놀래미를 가져다가 식당에서 회를 떠 겨우 회 맛을 볼 수 있었다.
 “이사장, 하필 골라잡은 날이 기가 막히는 그런 날일세.”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 날 잡아 복수전 어떻습니까?”
 “좋아, 좋아. 그렇게 하자구. 한 마리도 못 잡았지만 옆에서 남이 잡는 걸 보니 인천에서 잡히는 건 고기도 아니더군. 이 사장 꼭입니다. 박 사장 어떻습니까? 복수전.”
 “난 종일 멀미하느라고 정신이 없어서....... 어쩔까요.”
 “에이 그래도 박 사장님은 좋은 추억을 남기셨는데요, 뭘. 어떤 여인과 종일 동거동락 하셨지 않습니까?”
 “동거동락? 그렇지, 그렇지, 동거동락했지. 하하하.......”
 그 말에 우리는 모두 유쾌하게 한참이나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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