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대학시절에 낚시했던 추억입니다.
이름: 이효철


등록일: 2009-01-29 18:45
조회수: 3788 / 추천수: 358


  구정명절 잘들 보내셨는지요.
  두편의 낚시관련 글을 올려드렸는데 역시 낚시에 관한 추억의 글 한편을  올려드립니다.
  대학교 사학년 때 이야기이니까 1970년도, 지금부터 39년전 일입니다.
  40여년간의 낚시 추억 중 꼭 글로 남기고 싶었던 조행의 하나입니다.
  천천히 부담없이 읽어주시고 혹 생각나시는 일 있으시거든 댓글이나 한 줄 적어주셨으면 합니다.


         초지수로의 추억

  예전부터 강화도의 초지수로 하면 조사들 사이에는 알아주던 서울부근의 수로낚시터였다.
  
초지수로 부근에는 대원군 때 신미양요의 격전을 치룬 덕진진과 초지진이 이웃해 있으며 수로 남쪽의 초지 뱃터는 개화 후 오랫동안 인천으로 여객선 뱃길이 열렸던 곳으로 서울 인천으로 버스가 다니기 전까지만 해도 초지는 강화의 주요한 길목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인천 다녀 오갈 때마다 길옆의 초지수로를 걸어서 지나다녀야했다. 아주 가까이에서 보이는 수로는 수많은 게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이 신기했던 뱃터 옆의 갯벌과 함께 언제나 나의 호기심을 끌었다. 물위를 덮은 수초들 하며 수로의 독특한 냄새 그리고 그 속에는 많은 고기가 있으리라는 생각에 수로 옆을 지날 때마다 여기저기를 눈여겨보며 다녔는데 그 수로의 풍경은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는 곳이다. 지금 당시의 갯벌은 거의 다 간척되어 사라졌고 자갈길도 포장된 길로 바뀌었지만 길가의 수로는 아직까지도 그 옛날의 그 모습을 그런대로 간직하고 있다.
  낚시를 시작한 후 대학교 이학년 여름방학 때 처음 초지수로로 밤낚시를 다녀왔는데 그 낚시는 그렇게 큰 이야깃거리 없는 평범한 조행이었다. 그때 자주 다녔던 장지포 방죽보다는 씨알이 조금은 큰 것 같았고 부근의 황산도 윗 저수지보다는 잔 씨알이라는 것 그리고 마릿수는 괜찮다는 정도가 초지수로 첫 조행에서의 기억이다.
  그 뒤로 두어 번 더 초지수로를 다녀왔는데 한번은 수로 옆의 제법 큰 둠벙에 누가 농약을 풀었는지 온 물가에 죽은 붕어들이 하얗게 떠있는 것을 보고 실망하여 발길을 돌리고 그 뒤로는 굳이 초지수로를 찾지 않았다.  

  그런 초지 수로에서 나는 평생의 기억에서 잊을 수없는 낚시를 해보게 된다.

  그러니까 대학교 사학년 때인 1970년 여름 방학 때의 이야기다. 학군단 병영훈련 입소 바로 며칠 전에 혼자 황산도 윗 저수지로 일박이일의 밤낚시를 떠났다.
  장흥 제일 저수지라고도 불리는 황산도 윗 저수지는 강화읍의 집에서 온수리까지 버스를 타고 온수리에서 부터 걸어서 사십여 분 거리에 있는 사오천 평 크기의 아담한 저수지로 당시 그 저수지는 나의 단골 낚시터였다. 어쩌다가 그곳으로 낚시를 다녀다보니 분위기도 좋고 조황도 좋아 될 수 있는 대로 그곳을 찾았고 소위 내 포인트라고 하는 단골 자리도 생겨 대부분 내 단골자리에서 낚시하다보니 어느 바닥이 잘 낚이는 자리요 어느 시간이 잘 잡히는 시간이고 어느 미끼가 잘 듣는 지를 터득하게 되어 그 낚시터에서는 거의 빈 바구니가 없었다. 낚싯대도 두칸반대 하나와 두칸대 하나, 두 대면 족했다. 요사이야 더 긴 낚싯대도 많이 사용하지만 그 당시는 수제 대나무 낚싯대를 사용하던 때라 세간대 이상이면 대가 무거워 휘두르기가 힘들어 두간반대정도면 가장 무난하게 사용하기 편하던 시절이다.
   당시 그곳은 호젓한 낚시터로 보통 두어 명 내지 많아야 열 명이내로 찾아오던 곳으로 어느 때 가더라도 나는 내 명당자리에 거의 앉을 수 있었다.
  그날도 오전에 낚시터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었다. 물론 나는 내 명당자리에 앉아 낚시를 시작했다. 그날 낚시 후에는 바로 사주동안의 병영훈련 입소 준비를 해서 상경해야 하니 한참은 낚시할 수 없게 되어 내심으로 좋은 조황을 기대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조황이 별로다. 두어 시간동안 서너 수 올렸지만 씨알도 잘았고 마릿수도 평소의 절반 수준이 안 된다.
  오후 들어 서울서 왔다는 세 명의 일행이 그곳을 찾았다. 그곳이 초행이라는 그들은 내게 이런 저런 사정을 물어보다 내 자리 근처가 이 낚시터에서는 괜찮은 곳이라는 내 말에 그 셋은 내 주위에서 자리를 잡고 낚시를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조황은 계속 좋지 않았다. 그런 중에도 나는 내 단골자리인지라 그나마 서너 수 올렸지만 그들은 아무도 한수를 올리지 못했다. 답답한 그들은 내게 이것저것 물어왔고 나는 그들도 잘 낚았으면 하는 생각에 아는 한 성심껏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면서 서로 소주잔도 나누며 가까워져 갔다.
  그런데 오후에 낚시 전세버스가 저수지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서울의 모모낚시회란다. 좁은 낚시터에 수십 명의 조사들이 풀리니 한동안 저수지가 소란하다. 곧 어두워지기 시작하니 여기저기 칸테라 불빛이 저수지를 둘러쌓기 시작한다. 우리도 밥집에서 가져 온 저녁을 먹은 후 밤낚시를 시작했다. 
  그날은 밤낚시도 잘 안됐다. 바람도 별로 없는 괜찮은 일기였지만 거의 빈 바구니였다.
  낚시회 일행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나마 단골 자리에 앉은 내가 이십여 수정도의 그저 그런 씨알의 붕어를 건진 것이 최고 조황인 것 같았다. 어쩌다 내 자리까지 와서 내 살림망을 들여 올려 본 낚시회의 한 두 조사는 그나마 정도인 내 살림망을 부러워하며 그날의 조황에 매우 실망하는 눈치였다.
  내 옆 일행도 밤새 두서너 마리 낚는데 그쳤고, 그리고 한 사람은 개시도 못 했다.
  새벽이면 나아지겠지 희망하며 아침까지 기다렸지만 그 상황은 그대로였다.
  대절 버스는 서둘러 아침에 그곳을 떠났다.
  아침식사 후 낚싯대를 접으려는 때 서울 일행이 묻는다.
  “혹시 이 근처에 좋은 낚시터가 없을까요?”
  “아니 장소 옮겨 다시 한 번 해보실려구요?”
  “예 한번 모처럼 와서 그냥 돌아가긴 그러네요.”
   이야기 듣고 보니 나도 한참 손 놓아야 하는 낚시인데 마음이 동하는 이야기다. 그리고는 곧 초지수로를 생각해냈다.
  “ 근처 한 시간 거린데 초지 수로라고 하는 곳 들어보셨나요? 허탕은 없는 곳입니다.”
  우리는 초지 수로로 가기로 작정하고 낚시 짐을 싼 후 저수지를 떠났다. 일행 중 한 사람은 볼 일로 서울 가야 한다고 온수리 쪽으로 떠났고 셋은 초지 수로 쪽으로 향하는 언덕을 넘기 시작했다. 당시야 낚시 다닌다 하면 거의 걸어 다닐 때인데 한여름 한 시간 길은 힘든 길이였다.
  그런데 초지수로에 도착하니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초지수로에는 인천에서 왔다는 단체 낚시 버스 한 대가 버티고 있었다. 초지수로에 단체 버스 한 대면 거의 앉을 자리 찾기가 힘들다. 힘이 빠진다.
  그래도 이리 저리 헤매어 일행 두 사람의 낚시자리를 찾아 안내하고 나니 내 앉을 자리는 거의 없다. 한참을 찾아 외진 곳에 가장 짧은 칸 반대 한 대 겨우 담글 자리를 찾아 대를 풀었다.
  윗 저수지에서 낚은 붕어들은 오는 동안 다 상해서 근처 적당한 곳에 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게 웬 사서 고생인가 푸념하며 대를 드리운 곳은 수초가 빽빽한 곳의 한가운데가 반 평정도 크기로 열려 있는 수심 세 네 자정도 먹는 곳이었다.
  짧은 칸 반대라도 요령 있게 앞치기로 해야 겨우 찌를 세울 수 있었다.
  낚시 자리치고는 너무 옹색한 곳이었으나 그나마 그곳밖에 없으니 어쩔 수없이 낚시를 다시 시작했다.
  떡밥을 콩알 크기로 해 대를 드리우니 곧 입질이 있었다.
  챔 질 하니 손바닥 크기의 붕어가 제법 힘쓰며 올라온다.
  얼른 살림망을 찾아 뒷 받침대에 걸어 물에 담그고 낚인 붕어를 살림망에 넣은 후 다시 채비를 던지니 조금 후 또 입질이다. 찌 올림도 깨끗하다. 당겨내니 같은 씨알의 붕어다.
  지금까지의 고생도 잊고 또 자리의 옹색함도 접고 나는 새 마음으로 낚시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입질로 그만그만한 붕어를 십여 수 올렸을까.
  본격적인 붕어입질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던져 넣기가 무섭다.
  찌가 서고 나서 하나둘 천천히 세어서 열쯤 세었을 때면 예신이 시작되고........
  그리고 잠시 후
  예쁘게 찌가 솟는다. 챔 질 하면 거의 같은 크기의 붕어가 낚인다.
  계속해서, 계속해서.......
  그 동안 낚시에 열중하여 수없이 낚시 다녀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누군가 고기가 잘 잡혀 담배 태울 틈도 없이 바빴다고 낚시가게에서 자랑하는 걸 들은 적이 있어 설마 했는데 이건 장난이 아니다. 거의 일분에 한 마리 꼴로 쉴 사이 없이 고만고만한 붕어가 계속 낚인다.
  떡밥도 미리 콩알 크기로 준비해서 낚인 붕어를 살림망에 넣자마자 바늘에 끼웠다.
  어쩌다 큰 놈이 물려 세게 당기는 경우는 모두 수초에 걸려 빈 바늘만 나온다.
  오히려 큰 붕어의 입질은 없기를 바라며 낚시를 계속한다.
  계속되는 입질, 입질.......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내 평생에 이런 낚시를 몇 번 더 할 수 있겠나.”
  내가 낚시하던 곳은 외딴 곳이어서인지 아무도 내 자리에 와보는 사람이 없었다. 윗 저수지에서 동행했던 일행 둘도 낚시 끝낼 때까지 보지 못했다. 아마 중간에 철수한 모양이다.
  세 시간 정도 지나니 입질은 계속이지만 더 낚을 흥이 없어진다. 살림망을 들어보니 들기가 힘들다.
  낚시를 끝내고 짐을 정리한 후 온수리 쪽으로 출발했다. 고기바구니를 들어보니 무척 무겁다. 보통 낚시 후 돌아올 때는 빈 바구니가 무겁지, 많이 낚아 돌아올 경우의 고기바구니는 결코 무겁지 않다. 그런데 그날은 솔직히 고기바구니가 무거워 이 손에서 저 손으로 바구니를 번갈아 들어가면서 온수리 정류장까지 도착했다. 남은 버스시간 동안 근처 식당에서 마신 한 잔의 왕대포의 맛이 그리 좋을 수가 없었다. 거의 40년 정도가 지났는데도 그 막걸리 한잔 마시던 기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하물며 그날 초지수로의 일을 어찌 잊겠는가. 

  그날 세 시간에 백오십 수의 붕어를 낚은 초지수로의 기록은 나의 영원한 기록이다.
  그 뒤로 더 많은 양의 붕어를 낚은 적은 제법 있었어도 그 때처럼 짧은 시간에 계속해서 그렇게 바쁜 입질을 받은 적은 그날 이후 아직까지 한 번도 없었다.
  한때 초지수로의 기록을 언제 다시 갱신할까 고대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 기록은 내 평생 낚시에서는 절대로 깨어지지 않을 기록이라고 확신한다.
  아울러 이런 일을 기록 운운하며 더 많이만 낚으려들고 그리고 고기욕심에 모두 낚인 붕어 모두를 가져오던 그 옛날의 낚시 습관들이 지금은 후회되기도 한다.
  그 뒤 초지수로로는 신혼 때 집사람과 함께 겨울 낚시로 몇 시간 들른 적 이후로는 낚시하러 한 번도 찾지 못했다. 초지대교가 생긴 후로 고향 찾을 때 자주 그 곁을 지날 뿐이다.

  요새도 초지대교를 건너 초지수로를 지날 때 보면 강화는 수도권의 다른 곳보다 개발이 비교적 늦어 아직도 초지수로는 옛 모습을 상당히 간직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여기저기 낚시를 즐기는 모습도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옛날의 그 일을 생각하면서 앞날의 일도 상상해본다.
  이중에서 누군가는 언젠가 나의 40년 전 그날과 같은 행운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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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웅
사실 나는 낚시에는 문외한이고, 따라서 바다고 강이고 간에 누구따라 낚시를 간 것도 손가락으로 꼽아봐야 한손 주먹을 다 필 수도 없기에, 낚시에 관한 한 박사급을 넘어 달인의 경지에 이른 "孝哲 釣士"의 경지를 헤아릴 길도 없고, 그 분야에 대한 글에 대하여 언급할 자격도 없음을 먼저 告한 후 한 마디 소감을 피력하고자 한다.
내가 낚시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認知하는 것은 순전히 책을 통해서 막연히 추측하며 상상한 것이니 실제와는 사뭇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그래도 내 스스로 책을 통해 터득한 낚시에 대한 소회는 다음과 같다. 낚시에 빠진 사람도 골프에 빠진 사람과 거의 흡사하게, 아니 어쩌면 더 심하게 몰입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고, 그 자체로는 그 분야를 모르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한가한 자연을 벗삼아 청풍명월의 세월을 낚는 듯한 靜的인 느낌을 지울 수 없고, 그들이 말하는 낚시 맛이란 소위 "손 맛"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을 보니 3시간 낚시에 150수, 씨알이 어땠는지 모르지만 거의 1분에 한 수씩 걷어 올린 셈인데, 그래서야 어찌 "손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겠는지, 고기의 입질에 따른 움직임에의해 손과 팔로 낚싯대를 통해 전해오는 그 떨림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그래서 고기와의 Fair Play가 제대로 되지 못했다면 그건 제대로의 "낚시의 도"는 아닌 듯하다. "孝哲 釣士"의 젊었을 때 이야기이니 아직 경지에 이르기 전의 일일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본인도 그 때의 추억을 되살리며 너무 수확에만 몰입했음을 후회하는 討露를 헸기에 더욱 그러하다.
2009-01-31
00:12:34
엄영섭
세시간에 150수라면 조사가 아니라 민불 수로 어부라고 불러야 되겠네요.
2009-02-21
11: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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