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숭동 시절 가리방으로 원고를 정리해서 갱지에 등사하여 만든 화학과 친구들의 글을 실은 책자, 이른바 '화우지'가 발행 된 적이 있어 제가 콩트로 실었던 '나와 낚시'라는 글이 있었는데 최근 그 내용을 다시 정리했기에 올려봅니다.
참,그러고 보니 당시에 '교양과 정부생활'이란 제목의 글이 화우지에 실려서 그 글을 몇번이나 읽어봐도 도대체 납득할 수없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글의 제목은 '교양과정부 생활'이었답니다.
정말 옛날 이야깁니다.
제 글 부담없이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나와 붕어낚시
내가 붕어낚시를 시작한 건 1963년 봄, 그러니까 지금부터 45년 전인 고등학교 일학년 때였다.
어찌 어찌 마련한 두 대의 새 낚싯대와 받침대 그리고 지렁이 한 봉지와 떡밥 한 봉지, 거기에다 살림망과 낚시의자에 도시락까지 준비하고 홀로 집을 나섰으니 지금 생각해봐도 대단히 주도면밀한 첫 단독 출조였다.
당시 내가 살던 전동은 동인천역에서 걸어서 십분 거리였고 역 근처의 장안낚시점은 인천에서 알아주는 이름 있는 낚시 전문점으로 가끔 그 가게에 들러 주인과 손님들의 이야기를 귀동냥하면서 붕어낚시의 꿈을 키웠던 나는 어머니를 조르고 졸라 드디어 두칸대와 칸 반대의 붕어 전용 낚싯대를 마련하였다.
처음 찾은 낚시터는 문학 저수지로 동인천역에서 출발하는 문학행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려 이십분 정도 걸어가는 거리에 있는 만평 정도의 사각형모양의 평지형 저수지인데 당시 시내와 가깝고 교통편도 좋은 편이라 많은 낚시꾼이 찾던 곳이다.
낚시점에서 들었던 이야기들과 그해 초봄 당시 주안에 있던 수산고등학교의 양어장용 연못에서 몇 사람의 낚시꾼이 낚시하는 모습을 눈여겨 본 것이 붕어낚시에 관한 지식의 거의 전부였던 나는 이미 많은 낚시꾼이 자리한 저수지의 한쪽에 자리 잡고 우선 받침대부터 꽂고 난 후 다섯 마디의 칸 반대를 끝대부터 꽂아나가며 낚시할 준비를 했다.
들었던 대로 그리고 봤던 대로 대를 받침대위에 올려놓고 이미 낚시가게에서 찌맞춤이 끝난 찌를 찌고무에 끼워놓고 옆 사람들의 찌 위치를 살펴 찌 위치를 가늠해 조정한 후 낚싯대를 휘둘러 채비를 물 가운데로 던져놓고..........
옆자리의 청년이 내 모습을 보고 종일 친절한 스승이 된다.
낚시는 처음이냐, 처음 치고는 제법이다, 대는 천천히 휘둘러라, 찌 높이는 반 마디정도로 맞춰라, 의자는 좀 더 뒤쪽좌측으로 옮겨 앉아야 편하다, 지렁이는 그렇게 손바닥 위에서 때려 죽여서 사용하면 안 된다, 살아있는 그대로 적당한 길이로 잘라 끼워라.......등 등.
그날은 바람도 별로 없고 화창한 날씨로 낚시하기에는 아주 좋은 날이었던 것 같다.
여기저기서 작지만 많은 붕어가 낚여 올라왔고 나도 작은 크기지만 몇 마리의 붕어를 낚아내기 시작했다.
지렁이 미끼에 입질이 끊이지 않았고 시간이 갈수록 소위 붕어 입질의 예신과 본신의 차이를 조금씩 구별해가면서 나는 점점 낚시 삼매경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듣던 대로 붕어 입질은 마구 물어대는 망둥이 입질과는 상당히 다르네. 처음 찌가 움직이면 챔 질 준비만 해라. 기다리다 찌가 솟거나 물속으로 잠길 때 그때 챔 질을 해라.”
이렇게 되 뇌이며 시간가는 줄 모르는 사이 대여섯 수의 붕어를 건지고 난 후의 일이다.
일평생 붕어낚시에 꼼작도 못하고 빠지게 한 그 사건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갑자기 예신도 없이 찌가 물속으로 천천히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엉겁결에 낚싯대를 당긴 나는 꿈적도 않고 바닥의 무엇에 단단히 걸린 것 같은 느낌에 매우 당황했다. 그러나 망둥이낚시 때도 바닥 걸림의 경험이 있었으므로 그런 때처럼 낚싯대에 좀 더 힘을 주어 당기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줄이 조금씩 당겨지기 시작했다. 흙이 잔뜩 들어있는 군화정도가 끌려나오는 그런 느낌이었다.
주위의 낚시꾼들은 반월갈이 휘어진 내 낚싯대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고.........
그런데 수면위에 끌려나온 것은 군화짝이 아니었다. 신발도 아니었다.
아 글쎄 낚싯바늘에 걸려나온 것은 수염이 휘날리는 그리고 쩍 벌어진 입으로는 이승만박사의 초상이 그려져 있는 옛 동전도 들어갈 만 한 크기의 잉어가 아닌가?
적어도 한자 반은 넘는 당시 문학저수지에서는 낚기 힘든 크기의 잉어였던 것이다.
“야, 크다. 잉어다. 학생 계속 당겨.”
옆에서 스승이 큰 소리로 외쳤지만 순간 나는 낚싯대를 늦추고 말았다.
어떻게 마련한 낚싯대인데, 이 큰 잉어 올리다가는 틀림없이 부러지고 말텐데 하는 생각이 잉어 잡아야 한다는 생각보다 앞선 때문이었다.
“ 뭘 해, 학생 빨리 당겨.”
스승의 외침에 정신 차려 다시 낚싯대를 당겼으나 이미 빈 바늘만 튀어나온다. 벌써 그 사이 잉어는 바늘을 뱉어버린 것이다.
주위의 탄식을 들으면서, 그때야 나는 내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내 평생에 그렇게 심장이 뛰는 것을 몇 번이나 경험했는가.
평생 처음해보는 낚시에 큰 잉어가 가장 짧은 칸 반대의 낚싯대에 더구나 떡밥도 아니고 잉어전용 미끼라는 짜개(깍두기 크기로 만들어진 깻묵 덩이로 대형 잉어용 미끼)도 아닌 지렁이미끼를 물어주다니....... 그런데 낚싯대 아까워하다 그걸 놓치다니 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 진 물이다.
“ 이제 다시 그런 경우가 되면 낚싯대를 결코 늦추지 않을 거야.”
다짐하며 다시 자리에 앉아 마음을 가라앉혀보지만 그 흥분은 오랜 여운으로 남아 이후 나를 40년 이상의 낚시꾼으로 남게 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그날 손바닥보다 큰 세 마리를 포함하여 삼십 수 정도의 때글때글한 붕어를 낚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놓친 잉어 때의 입질과 같이 그냥 물고 들어가는 입질을 두 번이나 더 받아 이번에는 두 번 다 낚싯대를 끝까지 당겨 낚아냈는데 낚인 것은 잉어가 아니라 적당한 크기의 뱀장어였다.
그날 놓쳤던 크기의 잉어는 이후로 십여 년이 지난 어느 늦가을 대구에서 가까운 낙동강변의 식실 늪이라는 수로에서 낚을 수 있었다.
이후로도 십년 전에는 안성의 한 저수지로 집사람과 같이 밤낚시 가서 밤새도록 한 마리도 못 잡고 다음날 오전에 자리를 옮겨 앉은 후 세 시간동안 자반에서 두자 크기의 잉어를 십여 수나 낚아 올린 추억도 있다.
그러나 그때의 기쁨이나 흥분은 그 옛날 문학저수지에서의 첫 번 놓친 잉어가 남겨준 그것보다 더 대단할 수는 없었다.
그 후로 시간만 나면 문학저수지를 찾았고 나는 점점 더 낚시에 깊이 빠져 들었다.
농구부에 있던 같은 반의 최 모라는 친구를 그 낚시터에서 만나 재미있게 함께 낚시했던 적도 있고 반장이던 이 모 군을 데리고 문학저수지에서 가서 낚시한 적도 있다.
지금은 문학저수지의 자리에 제이경인고속도로의 남동나들목이 들어서서 그 저수지의 일부만이 남아 유료낚시터로 운용되고 있다.
남동나들목을 나와 남동공단 방향으로 거의 다 나서면 좌대가 설치되어있는 적으마한 낚시터가 얼핏 보이는데 어쩌다 그 길을 지날 때마다 옛날의 그 문학저수지의 모습은 도저히 찾아지지 않는 그곳의 분위기가 나를 왠지 나를 애틋하면서도 복잡한 감정에 빠지게 한다.
그 이후 이어진 나의 사십년 낚시이야기 하자면 한이 없겠으나 그중에서 문학저수지로의 첫 출조 이야기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