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 글이 또 잡지에 실렸습니다.
이름: 이효철


등록일: 2009-02-20 10:49
조회수: 3952 / 추천수: 414



 낚시춘추라는 잡지는 제가 소위로 임관한 1971년 3월에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낚시전문잡지입니다. 올해 창간 38년이 되는 셈이죠.
 제가 낚시한 지가 벌서 40년이 넘는군요. 그리고 그동안 낚시도 얼마나 극성스럽게 다녔는지 저를 아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이효철 하면 낚시꾼으로 기억합니다.
 대학교 다닐 때도 많은 학교친구들이 저와 같이 낚시하러 강화도의 제 집을 찾았습니다.
 어느 날 문득 그 세월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나서 최근에 그 동안의 낚시 추억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낚시춘추를 애독하면서 독자들의 글들을 재미있게 읽던 기억을 떠올리며 내 글도 잡지에 실렸으면 하는 바램과 글이 모이면 나중에 책도 내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낚시춘추에 제 글을 투고했었습니다. 그랬더니 금년도 신년호에 “장지포 방죽과 가래질”이라는 제 글이 독자 에세이로 실렸습니다.
 그 후 다시 두 편의 글을 보냈더니 잡지사 기자로부터 연락이 있었습니다. 원고를 메일로 보내달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원고를 다시 메일로 보냈더니 그 글 중 ‘초지수로의 꿈같은 추억’이라는 제목의 글이 낚시춘추 삼월 호에 실렸는데 그 글은 이미 지난달 ‘초지수로의 추억’이란 제목으로 이곳 ‘세상사는 이야기’에 실린 글입니다.
 제목만 약간 바뀌었을 뿐 글자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실렸으니 제 글을 이미 읽으신 동문 여러분은 잡지 독자들 보다 먼저 그 글을 읽으신 셈입니다.
 물론 신년호에 실렸던 글도 ‘세상사는 이야기’에 실려 있습니다.
 지난번 화경회모임에 부부동반으로 모였을 때 바로 전날 끝낸 원고 하나를 몇몇 동창에게 보여주니 그 글을 동창회의 카페에 실었으면 좋겠다고 하여 다음날 다른 글 그러니까 내가 처음 낚시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를 ‘세상사는 이야기’에 실었습니다.

 그날 화경회모임 때 준비했던 글을 오늘 다시 올립니다. 이글도 낚시춘추에는 이미 투고했으므로 만일 잡지에 실린다면 동창 여러분이 먼저 보시는 셈이 됩니다.
  이 글을 올리면서 바라는 것은 더 많은 동문들이 동창회 카페에 들러 동문들의 이야기들이 꽃피웠으면 하는 겁니다. 전에 조광원 선배님이 열성으로 카페에 글을 올리실 때 한 번도 관심 가지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마음도 이글에 담습니다.

 글이 좀 길더라도 끝까지 천천히 읽어주시기를 .......... 
 

     도고저수지

 내 평생 기억에 남는 낚시추억 중의 하나가 1977년 7월에 도고저수지를 다녀왔던 일이다.
 그해 봄철 회사낚시회에서 다녀온 도고저수지에서의 조황이 나름대로 좋았기에 한참이나 별렀다가 일찍 여름휴가를 내서 그곳을 찾았다.
 그즈음에는 낚시회 중심의 대절버스 단체출조가 한창일 때고 개인출조는 일반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다닐 때라 요새같이 자가용으로 낚시터 찾는 경우는 보기 힘든 시절이었다. 강남고속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온양까지 도착한 나는 도고저수지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대신 급한 마음에 택시를 타고 오후 세 시경 도고저수지에 도착했다. 그날은 일요일로 그 시간 저수지에는 곳곳에 낚시하는 사람들이 보였으나 거의 짐을 챙겨 철수하고 있는 중이었다. 낚시터 관리소에 들러 좌대를 타겠다고 했다.
 사람이 좋아 보이는 관리인은 이틀 동안 낚시하겠다고 하니 저수지 가장 깊은 곳의 좌대인데 그곳이 좋을 거라며 나를 배로 태워주었다. 노를 저어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 중에 관리인은 초등학교 교감으로 있다가 사표내고 도고저수지를 수년째 관리한다고 했는데 교편 잡았던 선생님의 분위기는 도저히 느끼기 힘든 순박한 시골 아저씨의 인상이었다.
 한참 가물었기 때문에 저수지는 물이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내가 탈 좌대로 다가가는 동안 좌대에 아직 한 조사가 낚시하고 있어서 노를 저어가는 동안에 살펴보니 그사이 두 마리의 고기를 낚아내는걸 봤는데 괜찮은 씨알의 붕어인지 대 휘는 모습이 제법 그럴싸했다.
 ‘아 오늘 괜찮겠구나.’하며 좌대로 올라서서 보니 그 좌대는 대여섯 명은 같이 낚시 할 수 있는 크기로 복판에는 서너 명 쉴 수도 있는 선실 모양의 공간도 확보한 당시로서는 최상급의 좌대였다. 요새는 네 개 정도의 긴 철봉으로 좌대를 고정시키지만 당시 그 좌대는 네 방향으로 닻을 멀리 던져 줄을 당겨 고정시켜놓았었다.
 좌대에는 사십 중반의 조사가 낚시를 걷고 있었는데 그런대로 재미를 봤으니 나보고도 재미 좀 보시라 덕담하며 배를 타고 좌대를 떠났다. 관리인에게 저녁을 부탁하고 좀 전의 조사가 떠난 그 자리에 네 대의 받침대를 설치하며 낚시준비를 시작했다.
 제일 긴대로 세칸반대, 그리고 그 좌우로 세칸대를 그리고 두칸반대도 하나 설치하기로 하고 급한 마음에 첫 번째로 세칸대를 펴서 찌 수심을 맞춰 좀 전의 조사가 남긴 떡밥을 달아 던진 후 그 찌를 보면서 다른 대를 편다. 수심은 매우 깊은 편.
 두 번째로 세칸반대를 펴는데 세칸대에 벌써 입질이다. 당겨내니 여섯 치 정도의 붕어.
 벌써 이 정도면 오늘 그런대로 좋겠다는 느낌이다. 서둘러 살림망도 설치하고 낚은 붕어도 살림망에 넣은 후 시간도 충분한데 뭐 서두를 거 있나 하면서 네 대를 편성한 후 떡밥도 개어놓고 세칸반대의 강화삼봉채비용으로 원자탄과 떡밥을 섞어 만든 나 나름대로 비방의 원자탄 반죽미끼도 준비했다.
 수심이 깊어 두칸반대는 겨우 찌를 세울 수 있는 정도라 그 대는 아예 처음부터 채비만 내린 채로 다른 세 낚싯대 중심으로 낚시를 시작했다.
 좌대 앞에 보이는 곳은 저수지 제방 왼쪽의 중상류 쪽인데 봄철 회사 낚시회에서 낚시할 때 삼십 명 정도의 낚시회원들이 여기저기 자리했던 곳으로 물이 줄어 바닥이 다 들어나 있었는데 역시 물이 차면 아주 좋은 포인트가 분명해보였다.
 물이 줄어든 저수지에는 수십 개의 수상 좌대가 있었는데 그중 내가 자리한 좌대가 가장 큰 좌대로 다른 좌대는 모두 비어있었고 부근의 한 좌대에 한 쌍의 남녀만 낚시하고 있었다.
 입질은 심심치 않게 들어오고 씨알도 여섯 치부터 여덟 치까지 그런대로 만족스러웠는데 피라미 성화가 좀 심한 편이었다. 밤이 되면 피라미 성화도 줄어들 테고 이박 삼일의 일정이니 느긋하게 즐겨보자 생각하고 계속 대마다 미끼를 갈아주며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 역시 초여름부터 저수지는 밤낚시가 제격이지. 바람도 거의 없으니 오늘밤 기대해보자. 그런데 저 좌대의 한 쌍은 낚시하러 왔나, 딴 짓거리 하러 왔나, 이 괜찮은 조황에 고기 낚는 모습은 한 번도 안보이고....... 도대체 뭐 하는 거야 계속 둘이 가까이 붙어 앉아서 말이야........ 신경 쓰이네.’
 하면서 낚시를 계속한다.
 좌대 한편에는 누가 쓰다 남긴 엄청 큰 떡밥 덩어리가 있어 보니 약간의 깻묵가루가 섞인 떡밥 뭉치였다. 내가 즐겨 쓰는 삼봉용 비방의 원자탄 반죽보다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덩어리로 버릴까 하다가 별도로 보관해 두었는데 그 떡밥 덩어리가 종국에는 그날 큰일을 내고야 만다. 

 1977년 당시는 카바이트 칸델라로 찌를 보던 시절이라 대 편성도 칸델라 불빛범위를 고려해서 좁게 펼치던 때다. 그리고 밤낚시 중 칸델라가 말썽부려 낚시를 망치는 경우가 가끔 있어서 밤낚시의 경우 카바이트나 칸델라 간수 및 사용에 매우 신경을 써야 했다. 특히 칸델라의 가스 구멍이 막힐 때 뚫어주기 위해 군대 통신선을 잘라서 만든 칸델라 쑤시게는 간수하는데 무척 신경이 쓰이는 필수 도구였다. 하루 밤에도 서너 번 사용하는 물건으로 그 쑤시게가 없으면 그날 밤낚시는 끝이다. 요즘 케미라이트나 전자찌를 사용하는 신세대 조사들은 정말 행복한 거다. 요새는 전자찌나 케미 몇 봉지 갖고 밤낚시하면 그만이지만 당시야 조립식으로 쓰는 반사경도 있어 부피도 만만치 않은 칸델라에다가 비닐로 꼭꼭 쌓아도 지렁이봉지와는 별도로 보관할 수밖에 없는 카바이트도 잘 챙겨야 했는데 칸델라 사용에는 많은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했다. 낚시춘추에도 칸델라 광고가 심심치 않게 실리던 시절이었다.

 해가 기울 무렵 옆 좌대의 남녀도 배를 타고 철수하니 그 넓은 도고저수지에서 낚시하는 인간은 나 하나뿐인 것 같았다.
 서서히 어두워져서 칸델라도 켜고 나니 정말 저수지에는 혼자였다.
 기다리는 저녁식사는 오지도 않고.......
 그렇다고 요새처럼 핸드폰이 있을 때도 아니고.......
 기다리면 식사가 오겠지 하고 고픈 배를 달래며 마냥 앉아서 낚시만 할 뿐이다.
 밤이 되어도 피라미 성화는 별로 그치지 않는다. 미끼를 던지면 찌 서기 전의 찌 요동이 거의 그대로다. 간간히 여섯 일곱 치 내외의 붕어가 올라오는 중에 입질이 오랫동안 없어 대를 들어보면 대부분 빈 바늘인데 좀 딱딱하게 뭉친 삼봉바늘의 원자탄 떡밥도 입질이 없어 꺼내보면 아직 덜 풀릴 시간인데 빈 바늘이다. 피라미 성화같다.
 그래도 지루하지 않을 정도의 조황으로 미끼 달아 던지기만 좀 바쁠 뿐이었다.
 그러는 중에 아직 한 밤이 되기 전 어쩌다 거의 거들떠보지도 않던 두칸반대에 한낮에 보관했던 그 문제의 말랑말랑한 떡밥을 바늘마다 밤톨만한 크기로 달아 던져봤다. 그 때까지 나는 삼봉바늘 이외에는 밤톨이상의 크기로 떡밥을 달아 본 적이 없었다. 일 년 전 어느 어르신이 부드럽고 무른 떡밥반죽을 밤톨크기정도로 크게 바늘에 달아 제법 재미있는 씨알들을 낚아내는 것을 본적이 있었는데 주위에서 그런 노하우를 보여준 낚시선배들도 없었고 또 그런 식으로 하면 떡밥을 어찌 감당할까 하고 해서 잊었었다가 그때의 반죽과 비슷한 떡밥을 보고 그때 생각이 나서 그냥 그렇게 두칸반대에 달아 던져보았을 뿐이었다. 떡밥이 무거워서인지 대를 약간 당겨야 잠겼던 찌가 찌톱을 수면위로 내미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내 그 두칸반대는 아예 잊고 다른 세 대에만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다 한참이나 지난 후 어쩌다가 무심코 두칸반대의 찌가 솟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워낙 끝대와 찌의 간격이 가까워 좌대가 흔들려 찌가 솟았나 하며 불빛에서도 멀어 칸델라 불을 돌려 그 찌을 비추니 찌는 솟아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솟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
 깜짝 놀라 두칸반대를 당기니 낚인 고기는 힘이 장사다. 거의 두칸반대 길이만큼 깊은 수심에서 꺼낸 붕어는 여덟 치가 좀 넘어 보이는 지금까지 낚은 붕어 중 최대어다.  

 (여섯 치 붕어와 여덟 치 붕어는 어느 정도로 힘의 차이 나는 줄 아는가?
 단순히 길이가 두 치 더 기니까 길이가 긴 정도만큼만 더 힘이 셀 거라고 생각하는 바보는 없겠지만 한번 과학적으로 정확히 헤아려볼까?
 힘은 무게(질량)에 비례하니까 각각의 무게를 계산해서 비교해야지?
 6의 삼승인 216으로 8의 삼승인 512를 나누면 2.37이다.
 즉 여덟 치 붕어는 여섯 치 붕어보다 두 배 이상 무겁고 힘도 두 배 이상이라는 것이다.
 여섯 치 붕어 두 마리보다 여덟 치 붕어 한 마리가 더 낫다는 이야기다. 이해되나? 

 한참 잘 나가다가 웬 딴소리냐고? 알았습니다. 하던 이야기 계속 합시다.)

 두칸반대에 뜻밖의 입질로 큰 붕어가 나오니 즉시 아까처럼 또 그 떡밥을 밤톨만한 크기로 두 바늘에 새로 달아서 이번에는 정성껏 앞치기로 채비를 던졌다.
 미끼가 커서인지 채비는 속히 가라앉는데 대를 약간 당겨 찌톱을 수면위에 세운다.
 이제부터는 오히려 짧은 대에 더 신경을 모은다.
 얼마 후 다시 입질이다.
 깜박거리는 예신을 보이다가 아주 천천히 정말 천천히 찌가 솟기 시작한다. 마치 기차가 역을 출발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까지 다른 대의 찌올림과는 완연히 구별되는 너무 점잖은 입질이다.......
 챔칠.
 아까의 경우보다 더 강한 저항이 대 끝에 전해온다. 낚싯줄도 핑핑 소리를 낸다. 수면으로 끌려 나올 때까지 붕어는 몇 차례나 저항하며 힘을 쓴다. 건져내니 좀 더 씨알이 좋아 보인다.
 
이제 더 이상 다른 생각할 필요가 없다. 오직 그 짧은 대에만 신경을 집중한다.
 계속하여 밤톨 떡밥으로 붕어를 낚기 시작한다. 
 짧은 대에도 계속하여 떡밥을 달아 던지니 피라미성화가 시작됐으나 채비 잠기는 속도도 빠르고 떡밥도 크니 수면에서 중충까지 잠시 찌를 흔들어대던 피라미들도 채비가 거의 바닥에 이를 때면 덤비지 못한다.
 그리고 얼마를 기다리면 마치 기차역의 마이크를 통해 ‘잠시 후 찌를 올리겠사오니 조사(승객여러분)께서는 준비하시기 바랍니다.’하는 것 같은 예신이 있은 후 다시 목포행 완행열차의 출발과 같은 찌올림이 시작된다.
 챔질....... 그리고 낚싯줄의 피아노 소리........
 적으면 여덟 치에서 거의 월척 수준의까지의
붕어씨알........
 한 밤중까지 저녁 식사가 오지 않아서 그동안 배도 고파 관리인을 원망하고 있었는데 무슨 착오가 있었겠지 하며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뀐 지도 오래고 이제는 시장한 것도 잊은 채 생전 최고의 호황을 즐기기 시작했다.
 계속 점잖은 입질이다. 다른 대들은 아예 그대로 두고 강화삼봉의 세칸반대에만 원자탄을 더 굳게 해서 던져 놓으니 피라미의 성화는 극복하는 것 같았으나 입질도 늦고 씨알도 짧은 대만 못해 나중에는 긴 대도 신경을 껐다.
 이런 찌올림이라면 유치원생이라도 챔질에 실수할 수 없을 정도다.
 별도로 떡밥가루에 약간의 원자탄 가루를 섞어 비슷하게 말랑이 떡밥을 새로 만든 후 바늘에 달아 던져보니 마찬가지로 완행열차 입질이 계속 된다.
 새로 터득한 말랑이 떡밥낚시 하는 법에다가 그 미끼반죽 하는 법까지 마스터했으니 기분은 더 좋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광경을 보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좀 서운하다. 아니 한참 서운하다.
 평생의 기록적인 낚신데 누구 보아주는 사람 없소?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고 했나, 이제부터는 몇 년간 못해 본 월척 욕심이 나기 시작한다.
 몇 수 큰 붕어를 낚았지만 월척에서는 조금 빠지니 이제부터는 월척이다 하고 새우망에서 건진 새우를 다른 두 세칸대에 달아 던지며 딴청도 부려본다. 
 새우 미끼에는 피라미 성화도 줄고 씨알 좋은 붕어도 간간히 나오기 시작했으나 찌올림도 씨알도 말랑이 떡밥만은 못했다. 그래서 한 대를 말랑이 떡밥으로 바꿔보니 입질은 점잖았으나 씨알은 짧은 대만 못하다. 짧은 대 자리에서 채비를 내릴 때 가끔은 찌가 내려가다가 주춤하는 것을 보니 그곳에는 적당한 수초도 있어서 그곳이 그날의 최고 포인트였던 것을 확인한 셈이다.
 그렇게 그 포인트를 계속 파면서 한밤을 지새우다가 잠깐 눈을 붙이고 나니 동이 튼다.
 칸델라 불빛이 아직 필요한 어둠에서 다시 낚시를 시작하니 짧은 대에는 계속 입질이 들어오고 씨알도 그대로다.
 
살림망을 들어보니 이건 장난이 아니다. 워낙 많은 붕어들로 거의 차버려서 푸드득거릴 틈조차 없을 정도다.
 날이 밝아 칸델라 불빛 없이 찌가 보이기 시작해도 입질은 여전하다.
 조금 있다가 관리인이 배를 타고 좌대로 들어온다. 매우 미안하다고 하면서 밥상을 올려놓으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자초지종을 말한다.
 “아휴 손님 미안해서 어쪄지유, 글쎄 어제 저녁 볼일이 있어 온양에 다녀오면서 옆집에 손님 저녁을 부탁하고 갔었는데 아침에 보니 글쎄 깜박했다잖아유. 저두 깜짝 놀랐시유.
 정말 죄송해유. 어쩌지유, 손님.”
 정말 미안해서 큰 난리를 각오하고 황급히 식사를 가져오면서 주문도 안한 막걸리도 한 주전자 가져왔는데 좌불안석이다.
 “아이고 배고파 혼났시다. 이왕 그렇게 된 거 아침이나 먹읍시다.”
 나의 약간은 부드러운 분위기에 조금 마음이 놓이는지 관리인은 다소 표정을 풀며 막걸리 한잔을 권하면서 내 옆에 자리를 잡는다.
 “손님 한잔 하시고....... 그런데 좀 잡으셨슈?”
 나는 살림망을 들어보라고 손짓했다.
 살림망을 들어보던 관리인은 그만 깜짝 놀라버린다.
 “ 아이쿠 대단하다. 이걸 손님 혼자 다 잡았소?”
 좀 전까지의 미안해하던 분위기는 순간 대박친 손님에게 반가워하는 표정으로 싹 바뀐다. 나도 심술 난 척하던 표정을 풀고 관리인에게 막걸리를 권했다.
 관리인 이야기로는 그해 도고저수지에서 그만큼 많은 고기를 잡은 경우는 내가 두 번째로 초봄에 물가에서 한 청년이 엄청 많은 붕어를 낚은 적이 있는데 씨알은 나를 따라올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 조항에 월척이 없는 것이 좀 섭섭했지만 더 낚을 생각도 사라져 오전에 철수하겠다 말한 후 천천히 도구도 챙기고 잡은 고기 중에서 큰 씨알의 붕어만 골라 바구니를 채운 후 시간 맞춰 다시 들어온 배를 타고 좌대를 나와 관리인과 작별한 후 낑낑거리며 바구니를 들고 나와 온양행 버스로, 또 서울행 고속버스로, 또 시내버스로 해서 숙소에 예정보다 하루 일찍 도착했다. 즉시 잡은 붕어를 자랑하며 숙소 옆 사택의 친구 집 등 여기 저기 나누어주는 중에 그 중 큰 붕어만 몇 마리 골라 과장 댁을 찾았더니,
 “야 이주임, 이번 휴가 중 결혼할 사건을 만들라고 특별 휴가비까지 챙겨줬는데 또 그동안 낚시만 다녀왔나. 영 가망 없구먼.”
 하고 핀잔만 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날 안양에 하루에 300밀리의 기록적인 비가 쏟아지는 큰 물난리가 있어서 얼마간 떠들썩했었는데 만일 당초 예정대로 도고저수지에 하루 더 있었더라면 나도 고생 좀 할 뻔 했다.
 그 주에 또 고속도로에서 미군 부대의 이동 중 화재가 발생하여 고속도로가 서너 시간 통제된 일이 있었는데 나중에 알려진 사실은 방위산업개발에 필요한 미사일 주요 부품을 확보하기 위해 일부러 만들었던 통치차원의 군사작전이었다고 했다.
 나 이주임이 도고저수지를 찾던 때는 바로 그런 시절이었다.

 바로 그해 겨울에 장가든 그 이주임은 15년 정도 지난 후 회사 직원들을 자기 차에 태우고 다시 도고저수지를 찾아 좌대를 타기위해 직원들과 함께 모터로 이동하는 배에 올랐다.
 “젊은 양반, 내가 15년 전 쯤에 저쯤 좌대에서 밤낚시해서 엄청 재미를 봤는데 그해의 기록을 세웠다고 그때 도고저수지 관리하시던 양반이 말씀하던데....... 그 교감선생님 하시다가 저수지로 오셨다는 분. 그분 지금 어디 계시오?”
 "아 그분 말씀요? 교감선생님 말씀이지유? 아유, 올 봄에 돌아가셨시유. 약주를 워낙 좋아하셔서 위암 걸려 작년에 수술했는데 올봄에 그렇게 됐지유.
 도고저수지에 오래 계셔서 단골손님도 많았는데.......”
 배를 모는 젊은이의 그 이야기에 일행은 마무 말없이 그 저녁 오르려는 좌대만 응시하고 있었다.

-답글달기   -추천하기     -목록보기  
엄영섭
취미로 시작한 일 프로의 경지에까지 오르기란 쉽지 않을텐데
윗글로 보자면 거의 프로시네요.
가급적 물고기를 가져다드린 그 과장님이 혹시 누구셨는지?
혹시 찐?자 들어가는 분은 아니셨나 모르겠읍니다.
2009-02-21
11:33:02
이효철
그날 그 물고기를 받아 매운탕을 즐긴 동창도 있었으니 바로 숙소옆 사택에 살고 있었던 두 딸의 아빠 박호진 동문이었으며 당시의 과장님은 훗날 회사의 대표이사까지 오르신 분으로 그해 이주임의 결혼을 누구보다도 축하하셨습니다.
2009-02-21
12:09:09
조광원
평소 입담이 좋은 효철아우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모두들 귀기울이게 되는데
자기가 좋아하던 낚시이야기를 이렇게 술술 써내려가니 글에서 눈을 떼기가 어렵습니다.
18회 동기 이 성수군이 가끔 효철아우랑 어울려 바다낚시가는 것을 보면서 무척 부러워했습니다.

나는 게을러서 취미도 많지않지만 낚시는 평생 댓번, 주로 예당저수지를 따라다녔습니다.
낚시 바늘은 손불 줄 모르고 갯지렁이나 지렁이는 아예 만지지도 않았습니다. 냄새 좋은 떡밥만 썼죠.
그래도 낚시대를 펼쳐놓으면 먼산보기가 좋았고 하늘의 구름보기가 그렇게 좋았습니다.
시력이 나빠 찌를 계속 보는 게 쉽지 않았거던요.
밥집에서 오는 큰 다라이에 담긴 각종 시골 반찬에 소주먹기가 무었보다도 좋았습니다.

물고기는 잡혀도 좋고 않잡혀도 좋았읍니다.
두번째 낚시 부터인가 잡은 물고기들은 한번 쓰다듬어주고 물로 돌려 보냈죠

효철아우의 여러 추억보따리들을 계속 풀어 놓기 바랍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2009-02-22
15:25:32
조기웅
낚시 그 자체에 대한 내나름대로의 소견은 孝哲 釣士가 최근 본란에 올린 글들의 댓글로 이미 표명한 바 있기에 더 이상 부연할 여지도 없어서 약하기로 하고, 낚시가 됬건, 골프이던, 등산이던, 당구 등 다른 운동이던, 아니면 음악감상, 화초 가꾸기, 그도 아니면 바둑, 마작 등의 잡기던, 그것이 무엇이던 몰입하여 흠뻑 빠지고 취해 본 경험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다 있으리라 생각한다. 젊었을 때 누구나 빠져보는 사랑이 어쩌면 몰입의 대표적 경우일 것이다. 대부분의 몰입의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어느 정도"로 그것에 몰입하느냐일 것인데 내 개인적 의견은 그것이 무엇이던 적어도 몇가지 경우에는 정말 흠뻑 빠져본 경험이 있을 수록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좋은 보탬이되고 추억도 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은연중에, 특히 어려움을 겪을 때 중요한 힘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흠뻑 빠져보지 않고는 어떤 것이라도 진수를 알기 어려우며, 그경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보편적 생각일 것이다. 그래서 어느 분야라도 한분야의 고수로 인정받기까지는 무엇인가 남다른 것이 있는 법이며, 孝哲 釣士는 그런 측면에서 인정되고 존경되어야 할 나름대로의 한마당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도 좋은 경험이 받침된 좋은 글 기대한다.
2009-02-22
19:04:23
박남규
형님 잘 아시쟎아요. 제가 형님 때문에 한 때는 낚시를 꽤 좋아했었다는 것을, 그 때는 참 구미 대구 중심으로 경상북도를 제법 헤집고 다녔지요.
대성(大成)지에서는 월척을 잡는 큰 뜻을 이루겠다고 큰 맘먹고 갔었는데 웬 걸,
하릴 없이 세월지로 돌아와 세월만 낚았지요, 멀리가면 될까하여 大遠지로 갔더니 거기도 거기라,
참으로 확률낮은 게임에 애꿎은 세월만 보냈어요,
신통하게도 같이 가서 같은 자리에 앉아도 형님 낚시에는 붕어가 끝도 없이 올라오는데 제 낚시대의 찌는 고요 명경지수라 고요 그 자체였으니 참 황당했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 형님 낚시라고 대단한 진수성찬을 꿰어서 달아놓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
그 때 늦게나마 깨달은 것이 있어요,
원인은 관심과 열정, 부지런함이었습니다.
저는 조금 안 된다 싶으면 던져 두고 드러누어 흘러가는 구름 보며 풍광구경이나 하던지 두꺼비(모 회사의 상표)를 잡던지, 다섯마리 새를 잡던지 했지요.
물 속의 길이라는 것이 사통팔달인데 물릴 놈은 물리겠지 하고......
그런데 형님은 달랐어요.
형님은 미끼를 비빔밥으로 했다가 안되면 볶음밥으로 했다가 또 안되면 지렁이와 떡밥의 부페를 차린다던가 , 하여튼 열심히 몰두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그저되는 것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절감했습니다.
그 후로는 저는 낚시는 포기하고 제가 몰두할 것을 찾아 제대로 해 보자고 결심했는데
아니 벌써 수십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테마를 모색중입니다.
한심하게도 쯧쯧
2009-02-26
20:59:41
의견(코멘트)을 작성하실 수 없습니다. 이유: 권한이 없는 회원레벨
-답글달기   -추천하기   -목록보기  
번호  글쓴이 제목 등록일 추천 조회
56
 조광원
 어떤 살인 2005-11-19 446 3905
55
 조 광원
 야~담~~ 2005-10-27 422 3935
54
 이효철
  우럭낚시이야기 2009-03-31 409 3935
53
 이효철
  그일  1 2009-08-06 422 3946
52
 조광원
 아, 어 머 니!!! 2005-12-21 434 3949
51
 만든이
 첫페이지로 리턴은 이렇게 하시면 편합니다. 2005-10-14 458 3952
 이효철
 제 글이 또 잡지에 실렸습니다.  5 2009-02-20 414 3952
49
 조광원
 박 정희와 M16 2006-06-01 442 3953
48
 조광원
 낡은 운동화 (퍼옴) 2005-12-18 453 3973
47
 테스트 합니다.
 하나둘 2005-10-17 521 3983
-목록보기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Copyright 1999-2023 Zeroboard / skin by DQ'St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