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 전 작은 가게를 하며 매일 새벽 시장에가서 과일을 떼왔지요. 그리고는 골목길을 큰 빗자루로 쓸며 동네사람들과 인사하는 것은 큰 낙이었습니다. 그날도 새벽 청과물시장을 다녀와 정리를 하고 아침을 먹었습니다. 늘 새벽에 일어나다보니 아침밥을 먹고나면 졸리기 마련이었죠. 가게에 딸린 방에앉아 TV를 보며 꾸벅꾸벅 졸고 있었습니다. 가게 문이 열리고 "담배 한 갑 주세요"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내가 "무슨 담배 드릴까요?"하자 갑자기 굵은 파열음이 들렸습니다. "돈 내놔!" 비몽사몽 중에 나는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방 안에서도 가게물건들이 잘 보이도록 매달아 놓은 자동차 백미러로 웬 남자가 아내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나는 반사적으로 뛰어나가 이단 옆차기로 그의 얼굴을 가격했습니다. 강도는 칼을 떨어뜨리고 달아났습니다. 나는 신발도 신지 않은채 뒤따라 달렸습니다. 눈녹은 골목은 미끄럽고 차가웠지만 끝까지 따라가서 잡았습니다. 팔을 뒤로 꺽어잡고 인근 파출소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강도가 소리내 울며 말했습니다. "제발 용서해주세요. 아내가 얼마전에 아기를 낳았는데, 분유값이 없어서 그랬습니다." 그는 거의 통곡하며 사정했습니다. 얼굴이나 행색을 보아 진담인 듯했습니다. 꺽었던 팔을 풀고서 집으로 데려 왔습니다. 방문을 닫고 소주 한잔을 권하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그는 직장을 잃었고 변변한 기술없이 힘든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어쩐지 서툴다 했지요."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며 말했습니다. "다 해도 강도 질, 도둑 질은 않됩니다. 아셨죠?" 나는 분유와 기저귀를 챙겨 그의 손에 쥐어주고 아침이라 매상이 적어 만원짜리 석장을 주어 그를 보냈습니다. 그 뒤 그는 인력사무소를 통해 건설현장에 나가게 되었고 쉬는 날이면 먼 곳에서 일부러 버스타고 우리 가게로 분유를 사러 왔습니다. 요즘은 가게를 하지 않아서 그 사람을 볼 수는 없지만 그의 형편이 좋아지고 아이들이 걱정없이 잘 자라고 있기를 바랍니다. 글 김 순진/응암동 편집 조 광 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