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아버지는 쌀가마부터 누렁이 여물까지 온갖 것을 지게로 짊어지고 날르셨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이었던 겨울 어느날,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는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려고 막 교문을 나서는데, 교문 옆 문방구 앞에 추레한 차림의 아버지가 지게를 지고 서 계셨습니다. 두툼한 담요까지 싣고 말입니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친구들이 보고 놀릴까 싶어 못 본척 고개를 돌렸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를 보자마자 큰소리로 "아이고, 우리 공주님 여기여, 여기!" "에이, 아빠는 챙피하게 왜 오셨어요?" "우리 딸 데리러 왔지. 이렇게 지게차까지 대령했는디." 지게에는 절대 안타려고 몸사리는 찰나, 아버지는 나를 번쩍 들어 지게위에 앉히고 담요로 칭칭 동여 매셨습니다. 눈 덮인 산길을 따라 십오리 이상 걸어야하는 딸 걱정에 지게 지고 마중 나온 아버지는 홑겹 외투에 검정 털신을 신고 계셨습니다. 매운 추위에도 아버지 이마에는 고드름 같은 땀방울들이 맺혀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아버지가 눈보라를 뚫고 오신 이유를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것은 작고 가녀린 막내 딸에게 가난한 아버지가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표시였는데 말입니다. 그 막내딸이 장성해 이제야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아무도 없습니다. 외양간 누렁이도, 아버지등에 업혀 다니던 지게도, 가진 것은 없어도 마음 하나는 부자라고 외치던 구릿빛 얼굴의 내 아버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