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여 샤워도 끝내고 신문을 뒤적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려 받아보니 시골 고창에서 홀로사시는 장모님의 전화였습니다. "여보세요? 자넨가? 날세, 장모일세. 나 시방 집앞 슈퍼앞 공중전화에서 전화걸고 있는데, 자네도 보고잡고, 내 새끼들이 얼마나 컸나, 잠깐 보고싶어 왔는디, 우리 외손주들 좀 잠깐 데리고 나올 수 있겄는가?" 애원하시듯한 말씀을 듣고, 아내의 눈치를 보며 애들을 데리고 나가보니 참깨, 참기름, 고추에다가 이 못난 사위가 좋아한다며 옥수수를 싼 보따리를 바리바리 머리에 이고 양손에 들고 땀을 뻘뻘 흘리시면서 그 먼 길을 찾아오신 겁니다. 하지만 집에서 저녁도 대접 못해드리고, 이대로 장모님을 보내드릴 수 없어 인근 식당에서라도 좋아하시는 육개장 한 그릇이라도 대접해드리려 했지만, 한사코 "내 새끼들 보았으면 되았지 뭘... 근데 김서방 얼굴이 야위었는가? 점심굶지말고 꼭꼭 챙겨먹어. 저 어린 것들을 위해서라도 자네가 건강 해야지" 하시면서 바지속 주머니에서 손수건에 싼 돈 뭉치를 제 호주머니에 넣어 주십니다. "지난 장날에 고추팔아 번 돈인디 얼마 안되지만 애들 엄마 몰래 두고 써." 되돌아가시는 장모님 모습을 한동안 멍히 바라보며 먼저 하늘나라로 간 아내가 사무치게 그립고 보고싶어 소리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집사람은 일 년 전 둘째 딸을 낳다가 잘못되어 그리운 가족만 남겨두고 하늘나라로 갔거든요. 일곱살짜리 큰 놈과 갓 난 어린애를 보니 기가막혀 아내 이름을 부르며 대성통곡했지만 아내는 다시 돌아 오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칠순이 넘은 장모님이 시골에 데리고 가 키우시고, 저는 혼자 회사에 다녔는데,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친척의 소개로 보름 전 재혼하여 지금의 아내와 살고 있죠. 하지만 지금의 아내는 처가 쪽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게 하고 장모님이 우리집 문턱에 들어서는 것도 싫어해서 이런 문제로 말다툼도 하였지만 어쩝니까? 어린 자식들 생각해서 제가 꾹 참고 살고 있는데, 오늘 같은 날은 정말 못난 제자신이 너무 싫고 어찌할 줄을 모르겠습니다. 항상 받기만하고 걱정만 끼쳐드리는 이 못난 사위지만 이번 일요일에는 장모님 보약 한재지어 아이들 데리고 찾아뵐까 합니다. 밭에 나가 가을 추수도 도와드리고, 장모님 팔베개에 누워 응석도 부리고, 담벼락에 주렁주렁 열린 호박을 따 부침개도 해 달라고 하여 맛있게 먹으면서 장모님을 외롭지 않게 해드리고 싶네요. 외동 딸 낳으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인어른을 잃으시고 홀로 딸 키우시며 의지해 오셨던 장모님! 그 딸 마저 가슴에 묻고, 이 못난 사위와 외손주들에게 정을 주시는데, 모시지도 못하고 홀로 사시는 장모님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옵니다. 오늘 아침 장모님이 주신 참기름으로 밥 비벼 먹는데 저도 모르게 장모님 생각에 울컥 목이 메어 옵니다. 그렇지만 장모님! 집사람도 이제 차츰차츰 마음의 문을 열고 있으니 힘드시더라도 조금만 더 참고 계세요. 꼭 제가 장모님을 모시고 살 날이 오니까, 제발 밭 일 좀 그만하시고 아프지마시고 건강하세요. 글 김 용 선/전북 부안 편집 조 광 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