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낚시이야기를 올립니다.
벌써 12년전의 이야기가 됩니다. IMF가 시작되기 전이니 요새에 비하면 무척이나 경기가 좋던 때이지요. 모처럼 장남과 같이 낚시터를 찾아 나도 아들도 평생에 기억할 수 있는 좋은 추억을 남겼습니다. 한번 글로 옮기겠다 마음 먹었는데 하루저녁에 글을 쓰고 나서 몇 번 고치는라 두어 주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아들이 지금은 직장 다니는 지가 사년째가 되는데 올 해는 장가를 보낼 예정입니다.
올 봄에도 시간되면 집 근처에 좋은 낚시터가 있어 아들과 함께 밤낚시 다녀 올 생각입니다.
두메저수지에서 큰아들과 함께.........
큰아들이 재수하던 1997년도 여름 이야기다. 여름휴가로 부모님도 모시고 두 여동생 가족과 함께 모두 열두 명이 며칠간 동해안을 다녀왔는데 큰아들만 공부한다고 대전의 집에 혼자 남았었다.
스스로의 의지라기보다는 분위기에 눌려 매년 가족들이 함께 모이던 휴가 참여를 포기했던 큰아들의 풀이 죽은 모습이 안 돼서, 그리고 남은 휴가 하루는 큰아들과 함께 낚시나 다녀오라는 집사람의 권유도 있고 해서 큰아들과 함께 집에서 차로 시간 반 거리의 안성 두메저수지를 찾았다.
모처럼 오랜만에 아버지와 함께 나서니 큰아들도 기분이 조금은 풀리는 모양이다. 차만 타면 늘 잠만 자던 아들인데 그날은 아버지가 자주 다니는 좋은 낚시터에 간다고 기대를 많이 하는 것 같아 저수지 도착할 때까지 옆자리에서 내내 즐거운 표정이었다.
안성의 남쪽에 있는 두메저수지는 당시에도 인기 있는 유료낚시터로 중부권에서는 물론 서울에서도 많은 단골들이 찾던 곳이다. 비록 수입 붕어 등을 방류하는 유료터였지만 십이만 평의 넓은 저수지에다 풍광도 수준급이라 나도 큰 거부감 없이 자주 찾았다. 아니 두메저수지를 알고부터는 다른 낚시터는 거의 발을 끊고 틈만 나면 그곳으로 열심히 낚시를 다니고 있을 때였다.
두메저수지에서 검은 안경에 모자를 눌러쓰고 오토바이를 타고 온 저수지를 누비는 관리인 박 부장과 인사를 나누는 정도면 틀림없는 두메저수지의 단골인데 물론 나도 그 중의 하나였다.
“사장님, 오늘은 아드님하고 나오신 모양이네. 어제 비가 와서 동막골에 이렇게 손님이 많이들 몰렸는데 용케 사장님은 단골자리를 잡으셨습니다.”
“예, 도착했더니 마침 누가 막 자리를 떴답디다........ 박 부장님, 어제 용평에서 집까지 오면서 큰비를 몇 번이나 만났는데 어제 여기도 큰비 왔습니까?”
“그럼요. 어제 비로 수심이 두자나 차올랐는데 아침까지는 물이 흐리다가 이제 새 물이 들어 물색이 점점 좋아지니까 오늘은 조황이 좋을 거예요.”
“그래요? 그동안 수심이 낮아 이 앞에 좌대가 없었구나. 오늘 모처럼 대박 터지겠네.
그리고 부장님 저녁식사 두 상 일곱 시 쯤 배달 좀 부탁드릴까요?”
“알았습니다. 저녁 후에 입장료도 한꺼번에 계산해 주세요. 한 번 더 들를 겁니다.”
동막골은 두메저수지의 여러 포인트 중 하나로 저수지 상류 쪽에 개울이 흘러드는 좌우로 물이 차올라 잠긴 곳이다. 동막골은 한쪽으로 이삼십 명 앉을 수 있을 정도로 자리도 넉넉하고 바로 길이 물가를 따라 나있어서 차들을 낚시 포인트 바로 뒤에 세울 수 있으며 건너편은 낚시자리가 없는 경사진 산자락으로 불빛이나 다른 소란스러울 이유가 없어 건너편 때문에 신경 쓸 일도 없는데다 무엇보다도 찌만 세울 수 있는 수심이면 거의 허탕이 없는 두메저수지의 특급 포인트로 나는 두메저수지를 찾으면 거지반을 동막골의 그날 자리 잡은 곳의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가끔 수상좌대가 동막골에도 설치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날 동막골에는 한 대의 수상좌대도 없어 눈앞에서 물가에 앉은 조사들의 기를 죽이는 일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두메저수지에서의 좌대 조황은 물가의 경우보다 워낙 월등한데 특히 봄철에 바로 코앞의 수상좌대에서 쉴 새 없이 큰 붕어를 낚아 올리는 바람에 김빠지는 경우를 몇 번이나 경험했다.
큰아들은 왼손잡이다. 그래서 같이 낚시 다니면 늘 그렇듯이 아들은 내 왼편에 자리를 잡았는데 2.5호대와 1.5호대를 꺼내주어 준비시키고 나도 3.5호, 3.0호, 2,5호 등 세대를 펼쳤다.
미끼는 평소대로 변산떡밥과 신장떡밥을 배합한 두메저수지 단골 미끼와 고운 떡밥반죽을 준비하고 또 짭밥용으로 지렁이도 챙겼다.
큰아들은 초등학교 일학년 때 강화도 온수리의 장흥저수지로 얼음낚시 가서 그날 저수지를 찾은 삼백 명 정도의 조사들 사이에서 유일한 월척을 잡아내는 바람에 한동안 꼬마 월척조사로 이름 날렸던 적도 있었지만 그 후 낚시가면 아버지가 가르치는 낚시방법 대신 엉뚱한 짓을 하다가 나한테 싫은 소리도 많이 들었다.
이를테면 붕어낚시에 집중하기보다는 좌대 밑의 불루길 떼에 더 관심을 가지고 바늘 채비에 지렁이를 달아 맥낚시에 열중하거나, 떡밥을 뿌려놓고 피라미 건진다고 뜰체질을 해대거나, 큰 고기들은 물 중간층에 많을 거라고 주장하며 붕어채비를 중간층 채비로 바꿔달라고 떼를 쓰며 졸라대거나 하는 경우다. 한살터울인 둘째는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낚시를 깨우쳐 벌써 초등학교 때부터 붕어낚시에 익숙한데 첫째는 오히려 낚시도 서툴고 주위가 산만해 아버지인 내가 상당히 마음이 쓰였다.
‘나는 고등학교 일학년 때 혼자도 낚시를 곧잘 배웠는데 큰 녀석은 왜 저럴까?’ 하고 말이다.
그래도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어려서부터 가족과 함께 낚시를 자주 다녀온 터라 큰아들은 두 낚싯대를 제대로 펴놓고 나에게 미끼를 달란다.
“진호야, 여기 이 반죽은 아버지처럼 이만하게 해서 달아 던져서 대여섯 번 우선 헛챔질을 해라. 그리고 오늘 짝밥 쓰면 좋을 거야. 짝밥 쓰는 거 알지?
봐라 저기 지금 고기 잘 나오고 있지? 오늘 아버지 하자는 대로만 하면 재미있을 거야. 알겠지?”
재수한다고 힘들어하며 평소 낚시터에서도 알게 모르게 아버지에게 잔소리를 많이 들었던 큰아들이었기에 말하기도 매우 신경이 쓰였다.
“알았어요. 아버지 그런데 짧은 대에는 지렁이만 쓸게요.”
“그래? 그래라. 비온 뒤라 지렁이도 잘 될 거야.”
1.5호대라도 지렁이보다는 짝밥이나 떡밥의 경우가 더 좋은 걸 알지만 그냥 더 마무 말없이 아들 하자는 대로 동의했다.
첫 고기를 잡아낸 건 아들이었다.
“아버지 이게 뭐야. 크다. 크다. 향어다. 향어. 아빠, 뜰채. 뜰채.”
첫 입질에 향어를 걸어낸 아들은 아버지를 어렸을 때 버릇처럼 아빠라 외치며 2.5호대를 세웠다. 아들은 서울 살 때 실내 낚시터에서 향어를 몇 번 건져낸 경험이 있어 그런지 큰 저수지에서 큰 향어를 처음 낚아내는 동안에도 결코 허둥대지 않았다. 아버지가 뜰채로 향어를 건져내주자 아들은 그야말로 좋아서 난리다. 아예 살림망도 하나 아들 전용으로 내어주니 그 살림망에 고기를 넣고 나서도 계속 싱글벙글 이다.
그런데 그건 시작이었다.
여덟 치 전후의 붕어들이 간간히 낚이기 시작하면서 부자가 경쟁하듯 향어를 꺼내기 시작한다.
저녁이 배달될 때까지 둘은 벌써 7,8수의 향어를 건졌고 붕어도 십여 수 낚아냈다.
물론 동막골에 자리 잡은 주위의 조사들도 여기저기서 고기를 낚아내느라 분주했는데 초보수준의 한둘을 빼고는 상류에서 흘러드는 새물을 따라 동막골로 모여든 붕어, 향어, 잉어의 입질 받느라고 모두 정신이 없어보였다. 그 중에서도 우리 둘의 조과는 탁월했고 부자간의뜰채작전도 환상의 팀워크를 이뤘다.
저녁을 끝내고 케미를 꺾어 꽂은 후에 동막골을 들른 박 부장은 아들의 살림망을 들어보고 나서 자기아들 일인 냥 즐거워한다.
“아버지 닮아서 솜씨가 보통이 넘네요. 허어....... 저쪽 어른들보다 낫다. 저쪽 양반들은 자기가 못 잡고는 자리 나쁜 곳에 앉게 했다고 우리한테만 투덜대요, 투털대.”
어두워지며 수많은 케미 불빛이 뿌려진 수면위로 여기저기서 고기를 낚아낼 때마다 공중에서 요동치는 케미의 몸부림이 서로 경쟁한다.
갑자기 아들이 짧은 대에 큰 고기를 걸어 씨름한다. 1.5호대의 휨세를 보니 향어 정도는 아니지만 여덟 치 급의 붕어도 아니다. 아들의 고집대로 사용한 지렁이에 낚인 놈은 오십 센티 정도의 메기였다. 나는 수없이 두메저수지에 다녔어도 메기는 잡아본 적이 없는데 살펴보니 양식메기로 방류한 종류였다. 하여튼 아들은 차분히 낚시에 열중이다. 처음 와보는 두메저수지인데도 마치 단골인 듯 어색함이 없다.
붕어, 잉어, 향어........
바쁘지 않을 정도로 고기가 낚이는데 특히 잉어나 향어가 걸리면 주변이 소란해진다. 두메저수지 향어의 중량은 최소한이 2키로 정도로 힘이 장사다. 십여 수의 향어를 부자가 건져내고 나니 손맛 느끼기도 지겨워 이제부터는 차라리 향어가 물어주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건 내 마음이고 아들은 향어가 걸릴 때마다 무척 즐거워한다.
간간이 살림망을 들어보면 언제 이만큼 낚아냈나 할 정도로 무겁다.
낚시에 열중인 큰아들을 보며 녀석 진작 저렇게 낚시를 했었어야지 하며 흐뭇한 기분에 빠진다.
미끼 달아 채비 던져 넣는 것 하며 챔질, 그리고 당겨내는 폼이 완전히 달라졌고 여유까지 있어 보이는데 무엇보다도 딴 생각 없이 낚시에만 열중하는 모습이 매우 대견스럽다. 공부하는 습관도 오늘 낚시하는 것처럼 집중하기만 하면 오죽이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미끼 갈아주는 간격 조절이나 챔질의 순간 포착 등에는 아직 미숙하지만 그건 이제 걱정 안 해도 스스로 터득할 터이니 이제 시간이 지나면 이 애비보다 더 앞서겠구나, 내가 아들나이였던 대학교 일학년 때를 생각해보면 지금 아들 수준이 오히려 더 낫다고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진호야. 지금 잡은 붕어........ 지렁이에 물렸냐? 아니면 떡밥이냐? 지금 짝밥 썼지?”
막 잡은 붕어를 손에 쥔 아들에게 물었다.
“예, 짝밥은 썼는데 뭘 물었는지는 모르겠는데요.”
“그런걸 알아야 더 잘 잡을 수 있거든.”
“아버지, 그런 걸 어떻게 알아요?”
“그러니까 낚시할 때도 머리를 써야 하는 거야. 지렁이는 잘 안 떨어지니까 지렁이가 남아있는 바늘을 확인하면 되는데 지렁이도 없어지는 경우가 많거든. 아버지는 목줄 길이를 약간 다르게 해서 미끼 달 때 미리 확인해놓거든. 그런데 익숙해지려면 시간은 좀 걸리지.”
“아 그렇겠네요. 알았어요.”
오랜만에 부자의 대화가 통하고 계속 고기도 잘 잡히니 밤이 깊어가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다.
아들은 밤새 작은 대에서 큰 메기를 두 마리나 더 낚았고 뜰채질이 필요한 크기의 잉어 향어도 가끔 건져내는데 아주 큰 놈이 아니면 혼자서도 뜰채로 담아내기까지 한다.
전날 부모님을 인천 집까지 모셔드리느라 장시간 운전한 탓에 피곤하여 차에서 눈 붙이는 동안에도 아들은 밤새 자리를 지켰다.
동틀 무렵 일어나보니 그 사이 서너 수의 향어를 더 건졌단다.
대충 따져서 향어만으로 해도 2Kg짜리로 스물다섯마리면 50Kg이니까 적어도 둘이서 60Kg은 잡은 셈이라고 아들에게 말해줬더니 아들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듯한 표정이다.
아들도 피곤하고 낚아내기가 질린 모양이다. 차에 가서 아들이 쉬는 동안 다시 낚시를 해보지만 아들 없이 혼자서는 흥이 별로 안 난다.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니 대부분 살림망이 그득하지만 우리 부자만큼 낚은 경우는 드물었다. 상류 쪽의 한 조사는 40cm급의 잉어로만 20여수를 낚아내고서는 자기 평생의 기록이라고 자랑했다.
날이 밝은 뒤 일어난 아들과 함께 두 살림망을 들어내어 고기들을 쏟아내니 아들의 열린 입이 닫힐 줄을 모른다. 나도 그만큼의 조과는 기대하지 않았었다.
“진호야. 붕어하고 메기만 골라 집에 가져가고 나머지는 다 살려주자.”
“그러죠.”
둘은 향어와 잉어를 한 마리씩 들어서 물에 던져 넣기 시작했는데 그 일도 땀나는 일이라고 나중에는 아들이 발로 향어를 물가로 밀어내기 시작하니 나도 아들 따라 향어를 발로 밀어내며 부자간에 낄낄거렸다.
짐을 정리해 차에 싣고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적당한 식당에 들러 아침 겸 점심으로 식사하기로 하고 동막골을 떠난 건 아홉시 전후였다.
지난 밤 낚시동안 즐거웠던 여러 순간들의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저수지제방쯤을 지날 쯤 자동차의 라디오를 틀었더니 잡음이 들린다. 이상하다 하고 더 소리를 높였더니 그것은 괌에서의 대한항공 여객기 추락 소식을 전하는 특별 뉴스였다.
그러니까 내가 큰아들과 같이 두메저수지를 찾은 날은 1997년 8월5일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휴학하고 군대 간 큰아들은 어렵고 힘들 때 특히 보초 서는 시간에는 아버지와 낚시하던 추억들을 더듬으며 그 시간들을 지켜냈다는데 한번은 고참 들에게 하루저녁에 60Kg이나 되는 고기들을 낚시로 잡았다고 말했다가 신병이 뻥이 세다고 해서 얼차려만 받았다고 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