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이름: 조기웅


등록일: 2011-03-25 16:14
조회수: 2707 / 추천수: 317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2011. 03. 23

“따뜻한 마음으로 臨해야 禮를 기대할 수 있고, 상대방을 헤아리는 따뜻한 마음은 가까이함으로써 가능하다(禮出於情 情出於近).

孔子의 禮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禮"란 무엇인가? 孔子가 이야기하는 "禮"란 人間 道理의 根幹으로 學習을 하는 것도 그를 깨우치기 위함이며, 제대로 알아 實踐함이 "仁"이라 하였고 "仁"을 통해서만 절대 경지의 "禮"가 이루어지며, 그 경지에 이르면 聖人이라 일컬을 수 있다 했다. "禮"의 대상은 사람은 물론 事物도 있을 수 있으나, 역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람과의 만남일 것이고 그 만남은 그 스스로의 얼굴이고 역사이며, 人格 그 자체이다. 一生을 통해 어떤 만남을 만들었는가가 스스로를 말해줌이다.

陋巷에서 俗塵에 부대끼며 士農工商 가운데 末席을 天職으로 30有餘年을 보내고 耳順의 나이도 中盤에 들어선 내가 어찌 孔子의 "禮"의 경지를 論할 수 있을까마는 바로 얼마 전 切親했던 친구를 먼저 보내며 세상을 살며 얻어진 숱한 만남 중 이 친구와의 만남이 나에게 어떤 의미이었는지 새삼 돌이키며 그와의 만남을 蘊蓄하고자 한다.

지난 2월4일, 설 연휴 끝자락에 시몬은 2년 가까운 투병을 끝내고 저 세상으로 홀홀 떠났다. 삼십 초의 나이에 직장동료로 만나서 서로 형이니 아우니 하며 지냈던 30여년의 만남과 갖가지 추억을 고스란히 내게 남겨두고 이른 아침 장례미사의 鎭魂曲이 울리는 가운데 臥病에 들기 얼마 전 찍어둔 듯한 환한 미소의 影幀사진 속 모습과 한 달 전 聖 빈센트 호스피스 병동에서의 호스피스 환자의 야윈 모습을 영화 속에서의 파노라마처럼 腦裏에서 교차시키며 내 곁을 떠나갔다.

하던 일을 어쩔 수 없이 접고, 늦은 나이에 취업하여 부산으로 내려간 최근 4-5년, 특히 그가 病魔와 투쟁하던 2년의 세월은 이런저런 이유로 자주 찾아보지 못했음이 지금까지도 큰 悔恨과 아쉬움으로 남는다. 病魔로 시달리는 모습을 보며 喜喜樂樂 이리저리 쏘다니던 옛 이야기를 나누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빤한 위로의 말을 건넴도 어쭙잖기도 하고 마음에도 차지 않아서 海仁 수녀의 詩 등 좋은 글을 뽑기도 하고 간단한 글도 쓰고 해서 몇 번의 문병을 간적이 있긴 하지만 어찌 그것이, 아니 그 무엇으로 30년이 넘는 그와의 만남을 갈음하는 補贖이 될 수 있으리오.

시몬이 떠나던 날, 구성성당에서의 장례미사에 참여하였으나 當日 몸살기운도 있고 하여 葬地에는 가지 못했는데, 49祭되는 날 그가 좋아하던 소주나 한 병 들고서 그의 묘를 찾아 추억을 곰씹으며 이제는 영영 되돌릴 수없는 別離의 아픔을 달래보려 한다.

가까운 만남이란 쉽게 풀자면 비교적 자주 볼 수 있어서 같이 이야기도 나누며 식사도 할 기회를 많이 가진다는 뜻이다. 피붙이처럼 관심을 갖고, 안 갖고를 떠나서 關係 斷切이 불가능한 경우가 아니라면, 상대방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즉, 가까이 함으로써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親密關係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친구, 동료, 이웃, 먼 일가친척 등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相互 지속적 관심을 보이며 기회를 만들어 자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쓴 소주잔이라도 서로 나눌 수 있어야 現狀의 관계나마 維持가 될 수 있음이 人之常情이다.

자주 가까이하려는 노력이 따르지 않는 만남의 지속은 있을 수 없다. 서양 속담에도 "Out of sight, out of mind."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지속적 관심을 가지고 변치 않는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利害打算이 걸린 만남, 이런저런 측면에서 현실적 이익을 念頭에 둔 관계란 限時的이기 마련이어서 서로 마음을 나누는 관계로까지 進展되는 경우란 아주 드물다고 봐야할 것이고, 철모르는 어린 시절 同門修學한 사이라 하더라도 오랜 기간을 이어가는 莫逆之友의 관계로까지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나름의 노력과 精誠이 밑받침 되지 않아서는 焉敢生心,결코 쉬운 이야기가 아니다.

링컨은 나이 사십이 넘으면 스스로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 이야기 했지만 만남에는 일생에 걸친 더 큰 책임이 있음이 당연하다.

함 석헌의 시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에 이런 구절이 있다.

" - - -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마음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 - -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위에 인용한 함 석헌 시의 다른 句에는 至高至純의 경지로 받아들여질 刎頸之交, 管鮑之交와 같은 脈絡의 만남도 言及되어있지만 且置하고, 東西洋을 莫論하고 여기 引用한 수준의 그런 만남이라도 요즈음의 分秒를 다투는 變化至上主義의 文明을 가진 사회에서 가능할 것인가 하는 疑懼心이 일음은 어찌할 수 없다. 科學의 발달과 文明의 進化에 따라 사람의 삶과 人間關係의 내용이 변화됨은 어쩔 수 없더라도 그 변화의 내용이 素朴함과 眞髓를 잃어 점점 刻薄한 형태로 변모되고 있음은 아닌지, 그래서 온 세상은 점점 속 빈 강정 같은 만남으로 넘치고 그런 만남이 지속될수록 內面은 더욱 더 虛虛로움에 傷心이 커지고 있음은 아닌지, 그러면서 세상은 人間 本然의 感性과는 점점 동떨어진 방향으로 이끌리며 허울만 그럴듯한 왁자지껄한 만남으로 煩雜스럽기만 한 것은 아닌지, 새삼 그동안의 숱한 만남을 反芻한다.

겨울이 범상치 않았던 올해 4월은 더욱 잔인하여 흰 목련, 노란 개나리, 분홍빛깔 복사꽃은 姿態는 한층 濃艶하고, 흐드러진 벚꽃의 화사함은 예처럼 우리의 눈과 가슴을 絢爛하게 하겠지만, 꽃내음 薰風의 日常 속에서 시몬과의 추억의 片鱗들은 어쩔 수없이 빛을 잃을 것이니, 이 것이 흙으로 돌아가는 자의 바람이며 살아있는 자에게는 宿命인가.
이봄, 그를 가까이 하여 따뜻함을 나눌 수 없음이 새삼 애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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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웅
이 글은 시몬 49제에 그의 산소를 찾아가서 그의 유족들에게 전한 것인데, 이곳에 올리며 마지막 부분을 손질했었는데 급하게 하다 보니 매끄럽지 못하기에 원문을 그대로 올리기로 했다.
마지막 부분 이외에는 그대로이나, 두어 곳 일부 표현이 부드럽지 못한 곳을 어순을 바꾸거나 하여 정정했다.
2011-03-31
13:4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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